참여마당

자유게시판

HOME > 참여마당 > 자유게시판
         
설레임 3
 작성자: 훈이아빠  2010-11-10 08:34
조회 : 3,279  

역 대합실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잠깐 뉴스를 보니
올 가을들어 가장 춥다는, 아직은 깜깜한 새벽입니다.
하지만 낮부터는 다행히 추위가 누그러진다는 보도입니다.

역 부근에 주차를 하며 보니, 쓰레기 수거차에 매달려 이동하는 청소부 아저씨들은
머리며 얼굴, 목을 목도리와 안면 마스크로 단단히 가렸더군요.
저같은 사람이야 차에서 내려 얼른 역으로 뛰어가면 그만이지만
그 분들은 몇 시간을 추위와 싸워야만 합니다.
새삼스레 새벽 출근이라고 어깨를 웅크리고 호들갑을 떨던 제가 부끄럽습니다.
문득 어린시절, 그래도 공무원이라고 쓰레기차를 모는 아저씨를 부러워하던
가난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생각났습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부족하고 어려울 때 아마
어떤 간절하고 진실한 소망이 마음 속에 좀 더 품어질 것 같습니다.

낼 모레면 드디어 청안 스님을 뵙겠네요.
오늘 울산에서 강연을 하시지만 거긴 힘들고
덕성여대에서나 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필이면 G20과 겹치다보니 교통 체증이 우려되어
좀 일찍 갈 생각입니다.
아직은 단풍이 남아 있는 계절이지만 금새
나무가 낙엽으로 앙상해지는 시련이 온다는 것은 생각치 않는 것처럼
스님으로부터 어떤 숙제를 받을지도 모르는데
마음은 그저, 마냥 들뜨고 즐겁습니다.

스님을 처음 뵌 건 지난 5월 초.
전북대학병원 정신과에서 마련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방법'이라는 강연이었습니다.
무슨 데이트 하러 가는 것도 아니면서
이발을 단정히 하고 안입던 양복도 꺼내 입었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처음이란 감정은
아주 흥분되고 에너지가 충천하는 경험입니다.
첫만남을 그렇게 정신없이 겪고 나서
그후 몇 번, 스님을 위해 기사 노릇을 하다보니
약간은 신비스러움이 가셔졌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그분의 인간미에 흠뻑 빠졌던 것도 같습니다.

스님과 작별하기 전, 뭔가 선물을 드리고 싶어 골똘히 생각해보니
곧 닥칠 여름 뙤약볕으로부터 스님 눈을 조금이라도 보호해 드리고 싶어
인터넷으로 선글라스를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 주변 사람들에게 문의해보니 제가 선택한 건
좀 값이 저렴한게 맘에 걸렸습니다.
성능이나 디자인이 모자란 건 아니었지만 선물하는건데...
괜히 마음이 찔리고 조금은, 걱정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마지막 여행길에 잠시 운전대를 잡으신 스님은
다행스럽게도 이미 선글라스를 소지하고 계셨습니다.
선물을 못 드리게 되었는데 왜그렇게 마음이 홀가분하고 좋던지...
덕분에 올 여름은 제 눈이 호강을 했습니다.

유달리 올해엔 더욱더 거리에 넘쳐나는 미녀들을 보아도
군침이 도는 맛있는 고기 요리들을 접해도
지적 호기심이 명상을 방해하려 할 때도
제 마음의 선글라스가 유혹의 자외선을 잘 차단해 주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모두 다 완벽히 차단한 건 아니었지만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는데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젠 눈부신 계절은 이미 지나가 버렸습니다.
오히려 따사로운 햇살이 그립고 반가운 시절이죠.
다가오는 겨울엔 퇴비를 잘 섞어서
새해 농사도 열심히 지어봅시다.
저 멀리 계시지만 신출귀몰한 손오공처럼
마음을 활짝 열고 우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는 청안스님.
우리도 한 번 한 발자국 내지르는 겁니다.
서로에게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가득한
한 해의 마감이 되도록 말이죠.
~ㅎㅎ
 

의견 3
은영이
훈이아빠의 따뜻한 마음이 우러나는 글이네요,왕~감동입니다,   10-11-10 08:47 
보적
12일 금요일 덕성여대에서 뵙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려요. _()_   10-11-10 14:08 
사강
어제 신논현역에서 일을 하고 바삐 나와 울산 1시기차를 놓치고 2시기차로 울산을 가서 질의 응답부분만 보고 다시 일때문에 광주로 가서 좀전에 돌아왔습니다. 훈이아빠의 글이 제 가슴을 다시 한번 울리는군요. ㅎㅎ   10-11-11 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