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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의미 - 구룡사 템플스테이 2
 작성자: 훈이아빠  2015-05-31 14:21
조회 : 2,652  

>> 일찍 귀가한 벌칙으로 리포트 하나 올립니다.

아들과 같은 중딩의 입장에서 인터넷 언어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ㅎㅎ <<


요즘, 인생에 대한 나의 정의란 그저 목숨이 붙어있으니 사는 것이다. 특별히, 어떤 목적을 추구하는 건 왠지 억지스레 생각된다. , “어떻게 살 것인가는 곰곰히 연구 할 일.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하고 싶었지만, 장인어른이 편찮으신 관계로 아내는 처가로 급파, 아들 두 녀석만 데리고 청안 스님을 뵈러 갔다. 2년도 넘게 못 뵌 것 같은데, 사실 수행도 공부도 요즘은 바쁘다는 핑계로 전혀 못하기에 평상시 같으면 설레일 마음이 이번엔 왠지 걱정스러웠다. 마치 공부 한 자 안하고 시험을 치르는 무대포 학생 심정처럼.

어쨌든 용돈을 듬뿍 뿌리고, 일찍 오겠다는 조건으로 아들들과 오랜만에 장거리 여행길을 나섰다. 초딩인 둘째는 쉽게 포섭되었지만, 말도 잘 안 듣고 혼자만의 세상에 빠진 것 같아 남들이 보면 혀 찰지도 모를 중2된 큰 녀석이 일단 따라와 주어 다행이었다. 가끔은, 돈의 위력을 실감한다.

다행히 비가 오락가락 하는 우중충한 날씨라서 장거리 운전이 짜증나진 않았다. 고속도로를 운행하면 인생, 꼭 좋은 날만 있거나 막히기만 하지는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어제도 호법 인터체인지를 통과할 때처럼 짜증나는 시간도 있었지만 예상외로 길이 여유 있게 풀려주어 감사했다.

날씨도 마찬가지. 물론 해가 쨍쨍하다면 쾌청한 산사의 늠름함을 감상하기엔 좋겠지만, 어제는 음이온의 촉촉함이 마음을 민감하게 깨워주었다. 그리고 마치 엊그제 본 것처럼 전혀 불편하지 않게 스님과 신도들을 만나니, 세월의 관록이란 이런가 싶기도 하다.

반가움에 잠시간, 사적인 얘기들을 나눈 후 나로서는 아마 처음인 듯, 길고 긴(!) 공동 참선을 경험했다. 스님이 지도하시는 특별과외를 단박에 익히고자 마음을 비우고 창 밖 새소리에 집중하려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옆자리 녀석들이 잘 견디는지에 자꾸 신경이 씌였다. 부모의 심정이란 게, 혼자 사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만 둔다고 나가지나 말아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이 전해졌는지 다행스럽게 참선은 별탈없이 끝났다.

이어서 스님이 한국어로 짧은 강의를 하셨다. 법문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약간 자유롭게, 학생들을 가르치는 형식으로 수행의 방향 설정과 인간으로 태어난 에너지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등 매우 유익한 내용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셨다.

특히 놀라웠던 건 스님의 한국어 실력이 그간 일취월장하여 영어에 약한 내게는 무척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영어를 잘 하면 얼마나 더 확실히 배우겠는가 싶기도 하지만 실천도 중요하니 어제 배운 가르침도 사실 내겐 벅차다.

물론 나만을 위해 노력하신 건 아니었겠지만, 애쓰지도 않고 남의 고생을 이용한 것 같아 영 미안스럽다. 아들 녀석들을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에게나마 조금이라도 바르게 사는 모습을 보이는 게 보답이리라 생각된다.

강의가 끝나고 한 번 더 참선이 이어졌는데, 이번에는 저녁 공양 냄새가 주의력을 앗아갔다. 스님께선, 아직도 수행에는 문턱 한참 밖에 있는 나를 위해 참선, 행공, 법문 등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하시는데 내 머릿속에는 그저 먹을거나 생각한다는 게 한심하게 여겨졌다. 어쨌든 방법에 대한 간은 보았고, 나름 의지도 생기니까 이제 꾸준히 한 번 해봐야지 각오를 새기고, 일단은 저녁 공양의 기쁨을 만끽하였다. 이놈의 식욕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해서 분명, 남은 시간에 방해가 될 걸 알면서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고 말았다. 역시 아직 멀었어...’ 하는 후회를 뒤로하고, 어정쩡하게 저녁 예불을 드렸다.

 

예불을 마치고 간단하게 스님과 차담 및 개인 소개의 시간을 가졌는데 처음 뵙는 분들이 많아 흥미로웠지만, 아들들이 또 좀이 쑤셔 해서 덩달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결국 녀석들을 먼저 방으로 보내고 잠시간 다담을 즐기다가 초여름 해를 서산으로 넘기었다.

잠자기 전 잠깐 옆방에 놀러가서 거사님들과 미진한 친분을 좀 더 쌓기도 했는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사실 나이 먹은 입장에서 부담되지만 이해관계를 떠나 공통분모가 있는 분들이어서 그런지 쉽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너무 사담에 빠지진 않고, 다음날의 새벽 예불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생소한 곳이라서 일찍 잠에서 깼다. 3시쯤 됐을까? 부스럭거리기 귀찮아서 계속 누워 있었는데 얼마 안 되어 화장실을 들락날락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조용한 산사의 새벽, 화장실이 인접해서였는지 소리가 꽤 크게 들렸다.

어슴푸레한 방에서 잠자는 녀석들을 살펴보기도 하다가 4시가 넘은 것 같아 천천히 새벽 예불을 드리러 대웅전에 오르는데 멀리서, 무섭게 달려오는 하얀 개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덩치도 크고 나한테 감정이 있는 듯 짖어대며 오는 것 아닌가. 이 무슨 낭패인지, 도망칠 곳도 없고... 새벽에 정말 날벼락 맞는 심정이었는데 다행히, 녀석은 나한테 위해를 가하진 않고 오히려 꼬리를 몇 번 흔들더니 유유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한숨을 휴 내쉬고 신선한 산 속의 새벽공기와 함께 개의 의미를 조금 생각하며 예불을 마쳤다.

하지만 곧바로 스님께서 참선을 권유하시는 바람에 약간의 고통을 맛봐야 했다. 어젯 저녁,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이 밤새 소화기의 길고 긴 터널을 거쳤는지 마지막 신호를 보내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겉옷을 특별히 준비하지 않아 법당 안이 좀 추웠기 때문이다. 집만큼 편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아름다운 절, 싱그러운 숲, 지혜로운 스님이 계시다 하더라도 내겐 역시 집이 제일 좋은 곳이겠지.

어쨌든 다리 절인 건 둘째 치고 나중엔 추위를 피하고자 참선 자세와는 거리가 있는, 어깨를 오므리고 뱃속의 앙탈을 잠재우는 데에만 신경을 썼다. 물론 예불만 끝내고 아침 공양까지의 시간에 혹시 있을 수도 있는 꿈나라 여행을 막은 건 좋았지만, 차라리 나 같은 경우는 잠바를 얻어 입고 어슴푸레한 산사를 둘러보는 게 나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참선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아직도 천국에서 대자로 누워있는 녀석들 사이를 비집고 따뜻한 방바닥에 등을 대었더니 더 이상 행복이 무어랴 싶었다.

아침 먹고 커피까지 마치니 반가운 신호가 드디어 임박하여 얼른 해후를 하고나니 천당의 마지막 빗장이 열린 기분이었는데 중2, 아들 녀석이 갑시다하는 묵직한 소리를 가볍게 내뱉는 바람에 산통 다 깨지고 말았다. 평상시 가장 적은 언어 교환을 하는 지인임에도 불구, 자신의 욕구를 분명히 표현하는 데엔 또 얄미웁게 철저하여 다시 한 번 내게 또 다른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것 같았다. 물론 일찍 오겠다는 약속을 하긴 했지만, 날씨도 좋은데 한 번쯤 아버지의 기분도 맞춰주는 게 자식 된 도리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자업자득, 나도 어차피 약속은 했으니까 더 이상 녀석에게 아쉬운 소리는 하기 싫어 사진 촬영이 끝나고 산행을 시작할 무렵 스님께 사정을 말씀드렸다. 약간 섭섭해 하시는 기운이 잠시 느껴졌지만 쿨하게 OK를 해주셔서, 천천히 뒤쪽으로 빠져 번거롭지 않게 무리를 벗어났다.

언제나 고생하시는 총무님과 보적님께 죄송하기 그지없었는데, 아들 녀석에 대한 서운함도 잠시간, 돌아오는 길은 운전하면서 졸려서 애를 먹다보니 오히려 덜 피곤할 때 오도록 해준 아들 덕을 보는 것도 같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또 그런 것일까?

우리가 간 날만 그랬는지 어쨌든 나이가 적은 사람들은 산사에 그다지 많지 않아서였을까? 아들 녀석들을 여러분들께서 귀여워해주시고, 공양을 준비해주시는 보살님도 김이랑 더 갖다 주며 챙겨주셔서 괜시리 내가 미안했다. 사찰을 다녀오면 항상 느끼는 바이지만 주변에 보이지 않게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애쓰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 직장 생활에 치이고, 청소년 자식들을 키우며 스트레스에 신음하다가도 철없는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이다.

집에 왔을 즈음, 평상시 거의 없는, 있어도 날선 대화가 주종을 이루는 큰아들과 오늘은 부처님을 왜 믿는지, 스님들은 왜 있는지, 불상에 절은 왜 하는지 등 순수한 대화를 몇 마디 나누어서 가슴 뿌듯하다. 나도 약간 삐딱하게, 부처님은 신이 아니지만 너나 나한테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스님들을 고용해서 거의 공짜로 가르쳐주다시피 하니까 최소한의 예의로 절은 해야 하지 않겠냐는 정도로, 눈높이를 비슷하게 맞춰줘서인지 점심밥도 그럭저럭 별 불평 없이 잘 먹었다. 아마도 스님들이 말 많은 신도들을 인도하는 마음도 이렇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집에 와서 커피를 한 잔 더 마시고 얼른 씻었더니 이제 좀 살 것 같다. 아들들은 벌써 친구들 만나러 나가버렸지만 내겐 청소며 빨래, 내일부터 시작되는 직장에서의 업무 준비 등 할 일이 쌓여있다. 하지만 오랜만에 잃기 싫은 좋은 추억을 일단 남겨놓고, 불교와의 관계가 느슨해지려 하면 한 번씩 나와의 약속을 다시 꺼내봐야겠다.

 

의견 2
이주미
예쁜 글씨, 아들들과의 좋은 추억..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15-06-01 06:06 
후추가루
만나 뵙게 되어서 바가웠습니다...()...   15-06-02 1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