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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1
 작성자: 가람지기  2011-07-17 08:20
조회 : 6,748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천은사 극락전의 아미타 삼존도에서



대세지 보살은 줄여서 세지보살이라고도 하며 득대세지(得大勢至),
대정진(大精進)이라고 번역된다.

대세지란 말은 지혜광명이 모든 중생에게 비치어 3도(三途;지옥,아귀,축생)를 여의고
위없는 힘을 얻게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한 대세지보살이 발을 디디면
삼천 대천 세계와 마군(魔群)의 궁전이 진동하므로 대세지라 한다.

일반적으로 불교의 근본 대의를 자비와 지혜로써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불교를 간략하면서도 단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아미타불의 바른편 보처(補處) 보살로 이마 위에 보배병을 얹고 계신다.

따라서 아미타불에게는 자비문(慈悲門)과 지혜문(智慧門)이 있는데,
이 가운데 관음은 자비문을 대세지는 지혜문을 각각 표시함으로써
이 양대 보살이 불교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보살이라 하겠다.

관음이 자비의 문으로써 중생을 제도한다면 대세지는 지혜의 문으로써 중생을 제도한다.

즉 세지보살은 지혜의 광명으로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비치어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를 여의게 하고 무한한 힘을 주므로 대세지라고 한다는 것이다.

관음보살이 머리의 보관에 아미타불을 나타내는 데 비하여, 대세지 보살은 아미타불의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머리의 보관내에 보배병을 나타내는 것이 특징이다.

손에는 연꽃을 들거나 합장을 하기도 한다.

연꽃의 의미는 중생이 본래 갖춘 불성(佛性)을 뜻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꽃이 핀 것은 불성이 드러나서 이미 성불한 것을 뜻하며,
그리고 봉오리는 불성이 번뇌에 물들지 않고 장차 필 것을 나타낸다는 차이가 있다.

또 합장의 수인(手印)은 염불하는 수행자를 맞아 가는 것을 뜻한다.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범어로는 마하스타마프라프타(Mahasthamaprapta)이며
대정진(大精進) 또는 득대세(得大勢). 대세지(大勢至)라 번역한다.

또는 줄여서 대세(大勢). 세지(勢至)라고도 한다.

아미타불에게는 자비문과 지혜문이 있는데, 왼쪽의 보처보살인 관세음보살이 자비문을 맡고 있음에 대비하여 대세지보살은 오른쪽의 보처보살로서 지혜문을 담당하고 있다.

이 보살은 그가 지닌 지혜의 광명으로 일체세계와 일체중생을 두루 비추어
삼도(三途)의 고통을 여의고 위없는 깨달음을 향한 보리의 힘을 얻게 하므로
대세지라고 이름한다.

이 보살의 크기는 관세음보살과 같고 그 원광의 지름은 125유순이며 250유순을 비춘다.

온몸에서 나투는 광명은 자마금색으로 시방세계의 모든 나라를 다 비추는데
인연이 있는 모든 중생은 다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이 보살의 한 모공(毛孔)에서 나오는 광명만 보아도
시방세계 모든 부처님들의 청정하고 미묘한 광명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보살의 이름을 끝없는 광명 즉 무변광(無邊光)이라 한다.

이 보살의 보배관은 500가지의 보배로 장식되어져 있고,
그 하나하나의 보배꽃에는 500여개의 보배꽃받침이 있으며,
그 낱낱의 꽃밭임에는
시방세계의 청정 미묘한 불국토의 드넓은 모습이 다 나타나 있다고 한다.

또 발을 디디면 삼천세계와 마군의 궁전이 진동하고
그 울리는 곳마다 5백억 송이의 보배꽃이 피고
그 꽃은 극락세계의 연못에 핀 연꽃과 같다고 한다.

또한 앉을 때에는 칠보로 된 국토가 한 순간에 흔들리며,
그 울림은 아래쪽으로는 금광불국토까지 이르고
위쪽으로는 광명불국토까지 이른다고 한다.

정수리에 보배병을 얹고 있으며 항상 아미타불의 바른편에 시립한다.

아미타불이 임종하는 중생을 맞으로 올 때
연꽃을 든 관음보살과 함께 합장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보살이다.

한 번 설법을 하게 되면 수많은 대세지보살의 분신들이 극락세계에 모여 들며
이 보살의 형상을 보거나 음성만 들어도 곧바로 교화를 입고 해탈을 하게 된다고 한다.

미타삼존(彌陀三尊)을 일컬을 때는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이 된다.



대세지보살은 산스크리트로 마하 스타마 프랍타(Maha sthama prapta)이다.

마하란 대(大)를 의미하고 스타마는 힘 또는 세력을 의미하는 중성명사로
력 또는 세(勢)로 한역된다.

프랍타는 가득 채운다는 뜻의 프라의 과거분사로서 ‘가득한’ ‘충만한’ 이라는 뜻이다.

즉 큰 힘으로 가득찬 보살이라는 뜻으로 세지보살(勢至菩薩), 득대세지(得大勢至),
대정진(大精進)보살이라고 불리워진다.

대세지보살은 지혜의 빛으로 모든 중생의 미혹함을 없애주는 보살이다.

즉 지혜광명이 모든 중생에게 비치어 3도(三途 : 지옥, 아귀, 축생)를 여의고
위없는 힘을 얻게 한다는 뜻이다. 

지혜의 힘으로 중생을 정토로 이끄는 님

대세지보살의 산스크리트 이름은 마하 스타마 프랍타(Maha sthama prapta)이다.

마하란 주지하다시피 대(大)를 의미하고 스타마는 힘 또는 세력을 의미하는 중성 명사로서
력(力) 또는 세(勢)로 한역된다.

프랍타는 가득 채우다는 뜻의 프라(Pra)의 과거분사로서 '가득한', '충만한'이라는 뜻이다.

결국 큰 힘으로 가득찬 보살이라고 하여 대세지(大勢至), 득대세(得大勢),
득세지(得勢至) 등으로 의역되었고 약하여 세지(勢至)라고도 했다.

대세지보살의 힘은 바로 지혜의 힘이다.

지혜는 빛으로 상징된다.
무명의 어둠은 지혜의 밝은 빛이 스며듬에 따라 자연스레 사라진다.

그 지혜의 강력한 힘으로 대세지보살은 중생들을 안락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것을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이 보살의 이름을 가이없는 광명인 무변광(無邊光)이라고 하며
또한 지혜의 광명으로 일체 중생을 두루 비추어,
지옥, 아귀, 축생 등 삼악도(三惡道)의 고난을 여의게 하는
위없는 힘을 지니고 있으므로 대세지라고 한다.'

그렇다면 같은 지혜의 보살로서 대세지가 문수와는 달리
어떻게 정토로 향하고자 하는 중생들의 타력적인 마음에 지혜를 심어줄 수 있었는가를 
그의 전생을 통해 알아보자.

『능엄경(能嚴經)』제5권에는 대세지법왕자(大勢至法王子)가 등장한다.

그는 오랜 옛날 초일월광(超日月光) 부처님으로부터 아이가 어머니를 간절히 부르듯
부처님을 일념으로 염하는 염불 삼매의 가르침을 받았노라고 하면서
그분의 설법 내용을 말한다.

'만약 중생이 부처님을 기억하면서 염불하면
지금이나 미래에 반드시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어
부처님과 거리가 멀지 않게 되리니,
방편을 빌리지 않고서도 저절로 마음이 열리게 되리라.

이는 마치 향기를 물들이는 사람의 몸에 자연스레 향기가 배는 것과 같으리니,
이를 이름하여 향광장엄(香光莊嚴)이라한다.'

이러한 내용의 설법을 듣고 왕자는

'저는 본래의 인지(因地)에서 염불하는 마음으로 무생인(無生忍)에 들어갔고,
지금 이 세계에서도 중생을 정토로 이끌어 돌아가게 합니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

결국 이 보살은 끊임없이 염불 수행을 해 온 결과 무생법인을 얻어,
그 힘으로 중생들은 정토로 이끈다는 말이 된다.

염불, 그것은 부처님을 가슴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염불을 임의대로 편의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일념으로 간절하게 부처님을 떠올려
그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진즉 삼매의 경지로 들어선다.

삼매의 경지에서 부처님을 부르니, 이미 거기에는 나와 부처님과의 간격이 없다.

나와 부처님은 한 몸이 된다.

대세지보살은 자신을 철저히 비우고 간절히 부처님을 염했기 때문에,
부처님의 대자비에 싸여 자타불이(自他不二)의 경지에 들어갔으며,
그것은 사실 반야의 불이(不二)적 지혜를 나타내므로로
마침내는 생사를 모두 여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자연스레 얻게 된 것이다.

여기서 지혜란 염불로 자신을 한없이 비워내
절대 타자인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한 결과 생겨난
'타력적 지혜'인 것이다.

그렇게 염불을 통한 불이적 지혜-타력적 지혜,
그 지혜의 빛으로 염불하는 중생을 정토로 이끄는 보살,
그 정토로 이끄는 힘이 어마어마하게 세서,
그 힘이 끝간데 없이 어디든지 미치기에 대세지라 하게 된 것이다.

아미타 삼존불, 우리의 대세지보살

대세지보살은 관세음보살과 더불어 아미타불의 협시(協侍)로 등장하여
한국인의 마음에 정토로 향하는 굳건한 힘을 보태준다.

가난과 고통에 좌절하여 쓰러지는 중생들에게 힘을 북돋워주며,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머물수 없다면서 부단히 독려하여
마침내 정토 세계에 당도케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대세지보살은 아미타 삼존불의 협시보살로서
그림 또는 조각으로 모습을 나투게 되었다.

경북 군위군(軍威郡) 팔공산 자락의 아미타 삼존불이나 천은사 극락전의 아미타 삼존도에서그 힘차고 아름다운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대세지보살의 모습을 보면 보관(寶冠)에 보병(寶甁)이 새겨져 있을 뿐,
그 밖에는 화불(化佛)이 담긴 보관을 쓴 관세음보살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이는 『관무량수경』의 다음 구절을 충실히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 보살의 신체는 관음보살과 동일하며, 원광(圓光)을 갖추고 널리 (빛을) 비추고 있다.

머리 정상의 육계(育계) 위에 하나의 보병(寶甁)이 있다.
그밖에 신체의 모습은 관음과 동일하다.'

군위의 제2의 석굴암 아미타삼존불에서 우리는 통일신라시대,
그 당시의 정토를 그리워하는 우리 옛 조상들의 굳건한 믿음을 읽을 수 있다.

천은사 아미타 삼존도는 1776년 그려진 것으로
아미타불화의 세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여기에 등장하는 대세지 보살은 보관에 보병이 새겨져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손에는 경책을 들고 있다.

이렇게 경책을 들고 있는 모습은 조선 시대 대세지보살상의 한 특징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이 보살의 지혜를 상징하는 것이다.

아미타불을 사이에 두고 대세지 보살과 나란히 서있는 관세음 보살은 화불로서
아미타불 입상(立像)이 새겨진 보관을 썼으며 손에는 보병을 들고 있다.

천은사 아미타 삼존도에서 느껴오는 자비의 미학은
어느 불화 못지 않게
우리들의 마음을 다정다감한 정토의 세계로 인도한다.

삼존불의 원만한 상호와 그윽한 눈동자에서 누구라도 눈물을 흘리며 도타운 자비와 지혜,
그리고 강력한 힘에 파묻히길 바랬을 것이라는 느낌이 온다.

사실 이 작품이 조선 시대 말기에 그려졌다면,
그 당시 가부장적 유교사회에서
할 말 못하고 서럽게 억눌렸던 여심들의 마음을
달랬을 것이고,

가난과 압박에 지친 힘없은 민초들에게 더없는 마음의 위안을 보냈으리라.

이 밖에도 아미타삼존불이 많이 그려지거나 조성된 사실을 보건대, 정토로 향하는 염불 수행자들은 대세지보살에게 지혜와 용맹스러운 힘을 간구했을 것이다.

대세지보살은 그렇게 현실의 질곡을 벗어나게 해주는 님 으로서의
우리 곁에 항상 서 있을 것이다. 

 

의견 1
ivory
이글의 천은사는 지리산의 천은사인가요?   11-08-04 18:11  답변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