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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2 questions 1
 작성자: 본성조이  2013-08-27 23:38
조회 : 2,737  

Dear sunym, thank you for your clear teaching in btn and public darma talk.

I have two questions.
One is , what is the definition of prayer.
Second one is, I heard sungsan sunym went thru 100 days prayer before getting
Enlightenment,then to whom he pray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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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두 개 있습니다.

첫번째는, 기도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두번째는, 숭산스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실때 100일 동안 기도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누구에게 기도를 하신 것인지요?

 


 

의견 1
ChongAnSN
In traditional Mahayana, the term 'prayer' meant an invocation of a Buddha/Bodhisattva, placing that in the center of your consciousness, and focusing all your energy on the quality that is represented by it. Then this quality transforms your mind, changes your karma. Thus, if you chant Kwanseum Bosal, you become more compassionate. Your 'I' changes for the better, but it is there, nonetheless.

There is another approach to prayer, which is simply desiring something and asking some celestial being to fulfill that. You can see that in many religions, including Buddhist practice. It brings results, however limited they are compared to full and unexcelled Enlightenment. Your 'I' does not change deeply, you just get what you want.

A third and most fundamental approach is when you neither invoke a Buddha/Bodhisattva, nor desire for something to get. This is when you use chanting to attain WHAT is chanting in you. We call that 'true self', 'Buddha nature' or 'original mind', but the terms do not come close to the experience. You forget and lose all our 'I-my-me', return to universal substance, and wake up.

This third kind of chanting is what Seung Sahn Kunsunim was doing during his 100-day retr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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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대승불교에서는, ‘기도’ 라고 하면 부처나 혹은 보살을 마음속에서 불러서,
자신의 정진과 깨달음에 도움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부처나 혹은 보살이 상징하는 그런 성질들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럴때 당신의 마음과 업이 바뀌게 됩니다.
따라서, ‘관음보살’ 을 염불하시면, 더 자비로와 지는 것입니다.
‘나’ 라고 하는 것은,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단지 더 좋게 발전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대한 두번째 접근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단순히 뭔가를 갈망하고, 어떤 천상의 존재가 그 갈망을 채워주기를 요청하는 것이지요.
그런 행태는 많은 종교에서 찾아 볼 수 있지요, 불교가 행해지는 행태에서도요.
하지만 그러한 기도를 통해서 얻는 것이라는 것은
불교에서의 깨우침 (Enlightenment)에 비하면 정말 초라하지요.

사람들의 ‘나’ 라는 것은 깊이있게 바뀌지 않고, 다만 그냥 원하는 것을 얻을 뿐입니다.

기도에 대한 세번째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접근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처나 혹은 보살을 마음속에서 떠올리는 것도 아니고,
두번째 접근방법인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세번째 접근방법은 염불을 다음과 같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속에서 염불을 하는 그 것 자체를 깨닫고자 할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진정한 자신’, ‘부처의 성질’’, 혹은 ‘최초의 마음’ 등으로 부르는데,
이 용어들은 그 깨달음의 경험을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합니다.

그 경험은 사람들의 ‘나-나의-나를' 이란 것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하고 없애버린 후에,
universal substance (전 우주적 물질)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그리곤 깨어나는 것이지요.

이런 염불이 숭산스님이 100일 동안의 retreat (안거)에서 하신 것입니다.
  13-08-29 14:43  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