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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arma talk from Water-물에서 배우는 법문(진리) 11
 작성자: ChongAnSN  2010-09-21 21:18
조회 : 4,410  



Dharma talk from Water

물에서 배우는 법문(진리)

   

We have over two thirds of our planet covered by water.
The rest is land. We have about the same proportion in our human body:
a little over two thirds is water, the rest is solid material.

우리는 3분의 2 이상이 물로 덮인 별에 살고 있습니다.
그 나머지가 땅이지요. 우리 인간의 몸 역시 똑같은 비율로 되어 있습니다.
3분의 2 이상이 물이고 나머지는 단단한 고체 물질입니다.


How do we treat this water, which is so important for our lives?

우리는 우리 삶에 매우 중요한 이 물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Look at the way water behaves:
If you pour it into a cup, it takes its form, and stays there until conditions have changed.
If you freeze it into ice, it stays like that until conditions have changed.
And if you bring it to the boiling point and let it evaporate,
it stays as vapor and steam until conditions have changed.
Water is so stable and predictable, its atoms never split by themselves,
its behavior is never altered over the history of this planet.

물이 움직이는 방식을 한번 지켜보세요.
여러분이 컵에 물을 붓는다면 물은 컵의 형태를 취합니다.
그리고 상태가 변할 때까지 그대로 있습니다.
여러분이 물을 얼린다면 그것은 상황이 변할 때까지 얼음의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물을 끓는점에 이르게 하고 그것을 증발하게 한다면,
물은 상태가 변할 때까지 증기 상태로 있습니다.
물은 그처럼 안정성이 있고 예언할 수 있으며 물 원자는 스스로는 결코 깨어지지 않습니다.
 물은 결코 이 지구의 역사를 넘어서는 변화를 취하지 않습니다.


On this planet, we have water shortage in an increasing number of places, more and more severe floods in another places, drying aquifers, receding rivers, increasing sea levels, altered sea currents, melting glaciers and icecaps, permafrost borderlines climbing ever higher.

이 지구별의 아주 많은 곳에서 점점 더 물이 결핍되어 가고 있습니다.
지하수(대수층)와 강물이 말라가고 있고, 빙하와 만년설, 북극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해수면이 점점 올라가고 있습니다.


And yet, we humans failed to notice and acknowledge that we make all this happen.
For millions of years, water followed the rest of nature,
behaving exactly like other elements, predictably as well as selflessly,
being in balance and harmony with the rest of the world.

그러나 아직 우리 인류는 이 모든 것을 우리가 초래했다는 것에 주목하고
그것을 인정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수백만년 동안 물은 자연의 일부로 흘러왔습니다.
사심 없을 뿐 아니라 예상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 세계의 나머지 부분들과
조화와 균형을 이루면서 다른 요소들과 더불어 움직여왔지요.


We humans have changed that. An imbalance in the fire realm, as we keep burning
more and more fossil fuels, and overuse of land for open-pit as well as deep
mining change the conditions for water, and its behavior grows more extreme.

우리 인간이 그것을 바꾸었습니다.
우리가 화석 연류를 점점 더 태우고 물의 상태를 바꿀 만큼 깊이 광산을 채굴할 뿐 아니라
노천광산을 남용함으로써 물의 움직임을 점점 극단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As human beings follow dualities more and more, and our minds become
more and more extreme, so do nature and all the elements reflect that.
Water has never changed its behavior so radically in history like in the last 20-30 years.
This will cause more and more problems, social upheavals and suffering.

인간 존재가 점점 더 상대성을 따름에 따라 우리의 마음도 점점 더 극단적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과 자연의 모든 요소들도 그것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물은 최근 20-30년 동안의 역사에서 보듯이 자신의 움직임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이는 점점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고 사회적 격변과 고통을 가져올 것입니다.


What can we do?
First, we should see cause and effect between us and nature, how our actions effect this planet.
Simultaneously, we must see the mind which generates all the causes and projects
them into the world.
If we truly attain the teaching nature gives us, we can attain our true self easily,
and keeping ourselves on the right path will not be difficult.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첫째, 우리는 우리와 자연 사이의 원인과 결과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이 이 지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말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모든 원인들을 발생시키고 이 세계에 그것을 투사하는
우리의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진실로 자연이 주는 가르침을 증득한다면 우리는 쉽게 우리의 참자기(true self)를
증득할 수 있고 어렵지 않게 올바른 길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How can we possibly have a notion of separation when our bodies and nature
depend on the same elements?
How can we not see the deepest community, if not through our true self but through everything we necessarily share with each other?

우리의 몸과 자연이 똑같은 구성 성분에 의존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 둘에 대해 분리된 관념을 가지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우리의 참자기를 통해서라기보다는 우리가 필연적으로 공유하는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이 심오한 공동체를 보지 않을 수 있습니까?


Those who are on the Path are lucky:
we can attain our true substance, which does not appear in any form.
Then seeing our interdependence, whether through water, air, fire or earth
is possible, and cultivating our practice to help all beings is possible.

이 길(법의 길) 위에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실체를 증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형태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모든 존재를 돕기 위한 우리의 수행은 물, 공기, 불, 지구를 통해서 가능하며,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상호의존입니다.


Be careful, be careful! Stone Buddhas cannot get through water,
wooden Buddhas cannot get through fire,
metal Buddhas cannot get through the foundry’s smelter.

주의하고 또 주의하십시오. 돌부처는 물을 통과시킬 수 없습니다.
나무부처는 불을 피울 수 없습니다. 동부처는 제련소가 될 수 없습니다. (?)


How you keep your mind determines your path.
Ice remains frozen and still, clouds float up to the heavens,
and water flows down to the sea.

어떻게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이 여러분의 길을 결정하도록 하겠습니까?
얼음은 언 상태로 남고,
구름은 하늘로 올라가고
물은 바다를 향해 아래로 흐릅니다.


Won Kwang Sa Juji

Chong An

habjang

 

원광사 주지

청안 합장                              (번역:김비아)



 

의견 11
훈이아빠
추석 연휴에도 열심히 번역해주신 김비아님 감사합니다.
평이한 문장인듯 하지만 심오한 뜻이 담겨있어 어려웠을텐데 참 많이 애쓰셨네요.
아마 다음 법문에는 '바람'이 등장하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ㅋㅋ

'물은 최근 20-30년 동안의 역사에서 보듯이 자신의 움직임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이 구절은
'역사적으로 최근 2~30년동안 그렇게 물이 급격하게 모습을 바뀐적이 없습니다.'로
번역하는게 어떨까요?

또, 마지막에서 두번째 단락은 
'석불은 물을, 목불은 불을, 철불은 용광로를 피할 수 없다.' 정도로 번역하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깊이 생각해서 상에 연연하지 말고 핵심을 수행하라는 뜻으로 생각되는데
어리석은 해석일까 두렵습니다.

법문을 몇 번 되풀이해서 보다보니
어떤 상황에서나 물의 본질은 변하지 않듯이
진리를 마음속에 확고하게 깨닫고
주변의 물결에 휩쓸리지 말라는 말씀으로 여겨집니다.
수행도 그렇겠지만 일상 생활에서도 눈에 보이는 헛것들 때문에
수시로 바뀌는 마음으로 소중한 시간을 덧없이 보내곤 합니다.
깊이 생각하고, 넓게 바라보려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여하튼 고생하신 김비아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화이팅~
  10-09-22 21:13  답변
   연결된 답글코멘트
김비아
훈이아빠님, 반갑습니다.^^; 연휴 때 멀리 갔다 와서 홈피에 이제 막 가입했네요. 통역하시던 분이 일이 있으셔서, 비전공자인 제가 갑자기 번역하는 바람에 어색한 곳이 많습니다. 훈이아빠님 말씀이 맞는 것 같은데요.^^;  좋은 날 되시옵소서.   10-09-28 19:11  답변
은영이
감사합니다,한비아,김비아,비자 들어간 이름이 성공하던데요,가수비등,,추석선물로 받습니다,^!^   10-09-23 12:42  답변 삭제
영이
_()_()_()_   10-09-24 16:12  답변
사강
스님 삼배 올립니다.   10-09-24 20:41  답변 삭제
보적
법문에 깊히 감사드립니다. _()_ _()_ _()_
열린 마음으로 자연의 움직임이나 주위 사람들의 삶에서 진짜 가르침(Dharma)을 배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Those who are on the Path are lucky"라는 말씀은 우리가 바른 길을 가고자 한다면, 온 세상이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으니, 행운이라는 말씀으로 이해가 됩니다.
한편으로 지금 이 세상은 "고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나도 그 속에서 중요한 배역 하나를 맡고 있지요.
  10-09-25 01:44  답변
다선
김비아님^^ 감사합니다   10-09-25 14:42  답변
대덕화
이 심오한 공동체란 말씀이 정말 깊이 와 닿습니다.  그리고 지구 전체, 모든 생명체, 무정 까지 다 꿰뚫어 보시는 큰 눈을 느끼며
감사의 합장올립니다.
  10-09-25 20:32  답변
하나
스님의 법문을 보니 궁금한게 있습니다.
법문 내용에 의하면  현재 마음을 바로하면 우리의 미래를 바꿀수 있다고 이해 했습니다.
이는 좋은 업<행위>은 좋은 미래를 만드다라고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업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작용하니  선업을 쌓으라는 선사님들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생각하고 행동하는 우리로 보자면 과거 업의 결과물로
 미래를 만드는 현재의생각,행동 또한 과거의 영향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는 업의 결과일텐데
 어떻게 현재시점에서 과거 업으로 부터 벗어나 새로운 선택을 할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럴 능력이 있다면 이미 업의 영향을 안받는 해탈한 사람이 아닐까요?
  10-09-29 22:58  답변
   연결된 답글코멘트
보적
묻고답하기에 질문을 올려보시면 어떨까요?   10-10-01 13:38  답변
대덕화
하나도반님,  처음엔 하나 님 하고 부르려다보니  하나님이 되네요.  정말 멋진 불명이시네요.  아니면 본명이신가요?  질문이 매우 진지하신데 답글이 없어 조금 안타까워 제가 나름대로 대답해보려 합니다.  다른 도반님들도 이것을 계기로 법담을 하게 된다면 그도 좋은 일이라 믿으면서요.    우리가 업에 매여 있고 업에 있어서는 수레바퀴의 자국이 남는 것처럼 인과가 분명한 거라 하지요.  그러나 불교는 바로 해탈의 종교입니다. 대 자유인이 되는 길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다 깨치지 못했더라도 자신의 행위, 말, 생각등을 반조하여 그것이 원래로 비어있음을, 제법이 비어있는 도리를 이해하면 실제로 그것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사르르 사라진답니다.  천수경에서는 ...백겁적십죄 일념돈탕진.. 백겁에 쌓인 죄도 한 생각, 즉 제법이 원래로 공하다는 것을 깨달으면 곧 사라진다는 것을 그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도반님이 걱정하는 바로 그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답이 되겠지요.

어떻게 업에서 해탈이 되는가 하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 바로 십이연기법과 사성제이고, 팔정도입니다.  십이연기법을 통해 업의 생성과 소멸을 알 수 있고 고집멸도 사성제를 통해서 또 팔정도를 통해서 업과 윤회의 고리에서 해탈하게 됩니다.  그래서 불교가 그토록 귀한 가르침인 겁니다. 천수경에서 보면 관세음보살님께서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난조우”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항상 외우는 반야심경도 바로 이 도리를 그대로 보여주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미국, 티베트, 미얀마, 태국에서 더 많이 접할 수 있는 명상을 통한 정신과 마음의 치유 등 역시 우리가 업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답이 되셨기를 바라고요.  이 도리를 깊게 생각해보시면 큰 환희심을 느끼시게 되리라 믿습니다.  나무석가모니불_()_  성불하세요!
  10-12-21 01:01  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