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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와 인터뷰-BBS뉴스와 사람들(2012년6월2일 방송) 2
 작성자: 가람지기  2012-06-03 17:49
조회 : 6,485  

no1.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뜻 어떻게 말씀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In our lives, if you see how much suffering there is on this earth, it is very clear: if somebody does not come to alleviate that suffering and teach us, then this world would be a much worse place. And it was not only the Buddha: great teachers both in the west and in the orient, they all came and taught us how to live on this earth. Therefore, we have a wonderful teacher--in fact, wonderful teachers--and a lot of wonderful teaching. Our job is to recognize the significance of this, and follow that teaching. If we do that, we can alleviate our suffering including ours personally, and all those beings' around us. So, Buddha's birthday is a good reminder: we can wake up, we should wake up and if we do wake up, then it has good results.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의 삶속에 얼마나 많은 고통이 있습니까.
이제껏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고통을 누그러뜨리는 것을 가르쳐 주신 분은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은 아주 나쁜 세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위대한 스승들이 이 땅에 나타나 위대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지구상에서 오셔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훌륭하신 스승님이 계십니다. 사실, 훌륭한 스승님과 많은 가르침들이죠. 우리가 할 일은 이러한 중요한 가르침을 이해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고통을 누그러 뜨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자신 뿐만 아니라 우리주위에 있는 사람들까지의 고통까지 도요. 그래서 부처님오신날은 우리에게 깨달을 수 있다,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깨달으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다 라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no2,

한국식 사찰을 지난 2010년에 부타페스트에 개원을 했는데요 원광사 어떤 절인지 말씀해 주시죠?

Well, I am very happy to say that 원광사 is a Korean Buddhist temple in 헝가리 and it's one of the those few places as we can see that is completely traditionally built building, with wonderful Western technology which reduces energy consumption, but interior and exterior completely remind you of a Korean Zen room. We are trying to give an absolutely authentic environment for people to practice, to feel completely home in that temple while they are practicing. So imagine mountains around the temple, very very few people in the vicinity and a quiet, clear environment completely surrounded by nature. And when Koreans visit our temple, which is always wonderful, they cannot believe that it is there with a Korean roof, in a Korean style building.

원광사가 헝가리에 있는 한국 불교식 사찰이라는 것을 말하게 되어서 너무나 기쁩니다.

그리고, 몇몇 장소 중 하나는 아주 전통적인 방식으로 지어지고 있습니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훌륭한 서양식 기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부와 내부는 정말 여러분에게 한국의 참선방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 절에서 수행하는 동안 정말로 집 같은 분위기에서 참선을 할수 있도록 아주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절 주위의 산들을 떠 올려보십시오. 인적이 드믄 이 곳, 그리고 완전히 자연에 둘러싸인 조용하고 맑은 환경들을요.. 한국 사람들이 우리의 아름다운 절을 방문한다면 한국식 스타일의 건물과 한국식 지붕으로 된 절이 이곳에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것입니다.

We consider it an honor that we could do it. But the teaching is wonderfully simple and clear, that of zen master Seung Sahn. I had a fortune to train at Hwagyesa under his direct guidance, together with international sunims and lay people and those 6 years were the most important in my life. I knew this even at that time. Everything I am doing in this life comes out of those 6 years. At the temple, we offer practice for winter retreat 동안거 at 원광사 following the solar calendar. We also offer 백일 summer기도, a hundred day summer kido and in between short ones like weekend retreats, and one week retreat for a lot of people including Asians, Europeans and Americans.

우리가 이러한 역량을 가졌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입니다. 하지만, 숭산스님의 가르침은 정말로 간단하고 명확합니다. 운 좋게도 저는 숭산스님의 직계 제자로서 화계사에서 여러 스님들과 그리고 재가신도와 수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도 느꼈었지만 이 6년간의 수행이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나날들이었습니다. 삶속에서 제가 하는 모든 것들은 바로 이 6년간의 수행에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원광사는 아시아인 유럽인 그리고 미국인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동안거 그리고 여름 백일기도를 짧은 기간 안에 예를 들어 주말 안거, 일주일 안거등을 제공 합니다

no3.

원광사를 조계종소속으로 기증한다던데요 이것이 사실인지요?

Yeah. This is true. 원광사 is under the registration process of becoming a 조계 order temple as we speak. By the time this gets on air or later repeated in BBS, this process may have been finished. I am very happy to say that both the Hungarian part when the whole Sangha voted, and also the Asian part when 수덕사 sunims gathered and then we did the resulting paper work and made our decisions together, that was wonderful.

네, 사실입니다. 말씀 드린대로 원광사는 조계종단의 소속으로 되는 절차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마 이 말이 방송을 타는 때쯤이면, 아니면 그 후에, 아마 이 절차가 끝나 있을 것입니다.

헝가리 승가스님들과 수덕사 스님들이 모여서 아주 훌륭한 결정을 하였다는 것을 알리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no4.

서구인들에게 불교는 어떤 종교인지 무척 궁금합니다?

Well, I have to make the word 'religion' a little bit clear and relative here. Because for westerners, Buddhism is primarily not a religion. They don’t go there to worship the Buddha. They want a change in their minds. So for them Buddhism is a way of awakening. It is not a philosophy, nor a religion, nor science, primarily for westerners. We must understand this if we want to teach Westerners anything meaningful. So, just telling them, 'Bow to Buddha!', they ask: 'Why?' 'Follow this and that practice!' 'Why?' They want to know, they want to experience, they want a change and that meaningful change in their consciousness can only be done by practicing together with them. So, they are interested in the Path. They are interested in awakening, but we must understand that the term 'religion' in the west has different meaning from the oriental concept of religion.

여기서 저는 우리가 흔히 절대시하고 있는 종교라는 단어를 좀 더 상대적으로 그리고 명확히 풀어드리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서양 불교는 원래 종교가 아닙니다. 그들은 부처님께 예불 드리러 가러 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바꾸려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있어서 불교란, 깨달음의 한 방법일 뿐입니다.
서양에서는 불교가 철학도 아니요, 종교도 아니고, 과학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서양인들에게 의미 있는 어떤 것을 가르쳐 주려한다면 말이에요. ‘부처님께 절 하세요’ 라고 말하면 그들은 반문할 겁니다. ‘왜요’ ‘이러한 수행법을 따르세요 또는 저러한 수행법을 따르세요’. ‘왜요?“ 그들은 알기를 원하고, 체험하기를 원하고, 변하기를 원합니다. 의식 속에서 그 뜻 깊은 변화는 그들과 함께 수행을 할 때에야 비로소 이루어 질수 있습니다.

서양인들은 도에 관심이 있고, 깨달음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서양에서 종교라는 용어는 동양에서의 종교라는 의미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no5.

서구인들에게 불교를 접목 시킨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That takes time. So, if you want to integrate some spiritual teaching before it takes root in people’s consciousness, and you want that to become a cultural item, that’s like cooking food with unripe ingredients. The ingredients must be ripe. In other words, people have to have the comfort to acquire the teaching, to experience its results, and to make them useful in their everyday lives. When many people use the teaching and the result of that teaching in their everyday lives, then you can say that a small seed of different cultural pattern is formed, and even that takes time. I mean, look at Korean Buddhism how many centuries it took until during the Shilla Dynasty it became really solid, supported by a lot of kings etc, etc, then it became a national property and national treasure, I should say. The entire Buddahism saturates Korea, and you cannot imagine the country without it. It took centuries, so we have to be patient as well as put the effort to the right direction. That means teaching people, answering their questions, helping them solve their problems. and then it changes their minds, it changes their lives, and their lives change the culture.

시간이 필요하죠.

정신적인 가르침이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뿌리내리기 전에 그러한 가르침을 통합시키고자 한다면 그리고 그 가르침이 문화적 아이템이 되기를 원한다면, 마치 설익은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재료가 익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편안하게 가르침을 받아들여야 하고, 좋은 결과를 체험해야 하고, 그들의 삶 속에서 그 가르침이 유용하게 해야 합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매일매일 그들의 삶속에서 가르침과 가르침의 체험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문화적인 양상의 작은 종자가 형성이 되고, 그것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게 됩니다.. 한국불교를 보십시오. 신라 왕조에 들어서 한국불교가 자리잡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까.

불교가 한국 전역에 퍼졌고 불교 없는 한국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우리가 말하는 바와 같이 불교가 지금과 같은 국가적 자산이 되고 국가의 보물이 된 것이지요. 많은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이 정법으로 노력한바와 같이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즉, 사람을 가르치고, 그들의 질문을 대답하고, 그들을 돕는 것이 그들의 문제를 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마음이 바뀌고, 마음이 바뀌면 삶이 바뀌고, 삶이 바뀌면, 문화가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no6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역은 바로 헝가리인데요 헝가리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과 느낌 분위기 같은 것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So, I am very happy to say that for Hungarians the good old traditional way of Korean Buddhism, like the forms: the way we sit, the way we see, the way we chant is very attractive. For instance, just a little bit of a story. Hungarian folk song they have is the pentatonic scale. Korean folk songs also have pentatonic scale. Here, because of Buddhism being part of country for like over 1700 years, all the Buddhist chants are pentatonic. So it goes into our ears very clearly and quickly. But I also have to say that the simplified and clarified version of Buddha’s teaching, which does not really resort to that much explanation but rather direct demonstrations and pointing out the right direction and the right way, that is 숭산스님`s speciality. The two to together--that’s great. In the korea tradition all 염불 all the 백팔배 all the 참선 everything, everything lined up. All the practice methods together with one simple point: wake up and help all beings.

So, if the tradition cannot have one simple foothold, something like open but fundamental, essential teaching, then people cannot grasp it. They are lost the details. That’s one extreme: too many details and the other something an unsophisticated undifferentiated, and people are bombarded with always the same kind of information. Now that is something that people cannot take either. So what I find wonderful in Korean Buddhism is that you have both ends of the scale (양극단): something really raw, simple and clear; and then you have the 10,000 details and the aesthetics, sophistification and the method and everything in between. There is a middle way. That is wonderful about this tradition. That’s why I am here.

좌선, 관, 염불과 같은 한국 불교의 훌륭한 전통적인 방식들은 헝가리 인들에게 대단히 매력적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헝가리의 대중노래는 5음계로 구성됩니다. 한국대중음악도 또한 5음계입니다. 불교가 1700년 이상동안 국가의 한 부분이 되어왔기에, 모든 부처님염불은 5음계입니다. 쉽고 빠르게 들립니다. 그러나 간소화되고 명확화 된 버전의 부처님의 가르침은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고 곧장 보여주는 것입니다. 올바른 길을 바로 알려주면서 말이죠, 그것이 바로 숭산스님의 특별함입니다. 아주 위대합니다. 한국전통, 모든 염불, 모든 백팔배, 모든 참선,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해있습니다. 이 모든 수행법은 “ 깨어나라 그리고 모든 존재를 도와라”라는 한 가지 단순한 가치를 지향합니다. 만약 전통이 개방적이고 근본적인 가르침이라는 하나의 간단명료한 기반을 가질 수 없다면, 사람들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세부적인 것들을 놓치게 됩니다. 그것은 한 극단입니다. 즉, 너무나 세부적이거나, 아주 단순하고, 획일적인 어떤 것 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같은 종류의 정보에 공세를 받고 있습니다. 자. 그것은 사람들이 또한 취하지 못하는 어떤것 입니다. 제가 한국불교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들은 정말 있는 그대로의 것, 간단하고, 명확한 중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만가지를 가지게 되는것 입니다. 그 속에서 철학적인 자료, 방법, 모든 것들이 중도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정말 이 전통에서 가장 훌륭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여기에 있게 된 것입니다.

no7

요즘 한국불교가 여러 가지 여려움에 봉착해 있습니다. 스님들의 부패와 스캔들 때문에 힘듭니다. 하지만 한국불교는 이번에 여수에서 wfb 한국대회를 유치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청안스님이 보실 때 한국불교의 장점을 무엇인지?

Well, I think Korea Buddhism (and not the only Korean Buddhism but also the Buddha's teaching in general) is very beneficial for all beings. We ourselves should strive to make effort to be a wonderful and correct representative of that teaching. Now it’s part of the Buddha’s teaching that nobody and nothing is perfect in this world. It is part of the most basic teaching, which talks about imperfection, impermanence, and interdependence all right? so these three marks, they are prevalent everywhere, and inside our minds as well. Everybody with sufficient insight into human existence understands our own imperfection, our own impermanence, and our own interdependence with other beings and other things.

제 생각에 한국 불교는 모든 중생에게 이익을 주는 가르침 입니다

우리 자신도 애를 쓰고 노력을 하여 그 가르침의 훌륭하고 올바른 대표자가 되어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 하나는 어느 누구도 어느 것도 이 세상에서 완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의 하나이며, 불완전, 무상, 연기를 뜻합니다. 이 세 가지 말은 어디에나 있으며, 우리마음에도 있습니다. 인간 존재에 대한 완전한 통찰을 가진 모든이는 우리 자신의 불완전, 우리자신의 무상, 그리고 다른 존재와 다른 것과의 연기를 이해하게됩니다.

So, in a situation when something critical appears, what is most important? First of all, keeping a clear and undivided mind. Not dualistic, not judgmental. This is fundamentally important, so that you could see things as they are, and your emotional reactions, and cognitive, thinking reactions would not cloud the truth. That’s number one.

경계가 나타날 때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

첫째로, 깨끗한 마음, 둘이 아닌 마음, 둘로 보지 않는 마음, 분별하지 않는 마음 이 모든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볼 수가 있으며, 감정적인 반응과, 인식, 그리고 사고반응 모두가 진리를 가리지 못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첫 번째입니다.

Number two: see your relationship to it. Are you directly involved? Do you have a real say in it? Do you have any job with it? Then the third one is function. If you have to do something, do it. if you don’t have to do anything, don’t do anything. So, it’s very important moment to moment to see that life and death, perfection and imperfection, good and bad, high and low, they are all like a big wheel. Sometimes people are up, sometimes people are down, but our relationship to this, our minds relating to this is the most important thing and the contribution that we can make.

두 번째는, 경계와 당신과의 관계를 살펴보십시오.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가?
당신은 그것과 관련해서 해야 할 일이 있나요?

세 번째는, 바로 작용입니다. 당신이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면, 하십시오, 당신이 어떤 것을 해서는 안 된다면, 하지 마십시오. 순간순간 마다 깨어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삶과 죽음 완전함과 불완전함, 좋고 나쁘고, 높고 낮고, 그것들 모두가 하나의 큰 바퀴와 같습니다.

가끔씩, 사람들은 기분이 좋기도 하고, 때로는 안 좋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계와의 관계에서, 경계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며,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몫입니다.

no8

한국불교와 서양불교의 차이점은 무엇인지요?

Well, these differences are cultural, therefore, very superficial. I was not trained in other Buddhist traditions to the necessary depth to compare, and I don't think comparison is that useful. If you like Kimchi, eat Kimchi. If you like dahl, eat dahl (lentil) If you like western food like hamburger, eat that. In any case, did you get the full stomach?

So, yeah, Korean Buddhism is great. I met a great teacher here, that’s why I am here. Therefore, I would not like to go into the little differences because it is not productive. I just appreciate that I can be a part of this tradition.

문화적 차이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매우 피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다른 불교를 수행해 오지 않았습니다.

다른 불교 전통을 비교할 만큼 충분한 깊이로 수행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김치를 좋아하면, 김치를 먹는 것입니다. 햄버거와 같은 서양음식을 좋아한다면, 그것을 드세요. 어떤 것이든 먹고 배가 부르면 그것으로 된 것입니다.

한국불교는 아주 훌륭합니다. 저는 한국 불교 속에서 숭산스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여기에 있게 되었습니다.

사소한 차이점까지 부각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산적이지(이득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불교전통의 한 부분을 담당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no9.

한국불교가 어떻게 개선되고 달라졌으면 하는지?

Well, first we have to improve ourselves. That`s the way to improve Buddhism, and here is no way around it. You can change the facade, you can change the exterior, you can change the method--but what kind of real change do you have inside? That’s what determines long term success. Let's just look inside ourselves, and let`s practice as much as we possibly can. That improves Buddhism. That improves the appearance of Buddhism, and its function abroad.

먼저, 우리자신을 향상시켜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불교를 향상시키는 길입니다.

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외모를 바꿀 수 있고, 외양을 바꿀 수가 있으며, 방법을 바꾸어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안에있는 정말 중요한 변화는 무엇인가요? 그것이야말로 바로 장기적인 성공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수행합시다.

그것이 불교를 향상시키고, 불교의 면모를 향상시킵니다. 그리고 해외에서의 불교의 역할을 향상 시킵니다

no10.

스님 어떻게 수행을 하셨는지 청취자들이 궁금해 하십니다.

숭산스님 가르침의 핵심은 어떤 것인지요?

Well the key point of Zen master Seung Sahn's teaching was always just “탁“ just this point, which means: return to the mind which is before thinking. Return to don’t know. When this don’t know mind becomes clear, then you can see your situation clearly, your relationship to the situation and your function in the situation.... so this teaching is simple and clear. Not systematic, but there are very understandable and clear lines of cause and effect in it. He didn’t want to create a system. So, it was not too logical, but it is always easy understandable. it`s very intuitive. He also emphasized great courage, great question and great faith.

숭산스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항상 “탁” 바로 이것 이었습니다. 즉, 생각이전의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뜻입니다. “오직 모를뿐“으로 돌아가라. 이것이 바로 첫 번째 핵심입니다. ”오직 모를뿐“이라는 이 마음이 점점 명확해지면, 여러분의 상황, 여러분의 상황과의 관계, 그리고, 상황 속에서의 작용을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으며, 그래서 이 가르침은 간단하고도 명확합니다. 체계적이지는 않으나 매우 이해하기 쉬우며, 명확한 인과관계가 이 가르침에 있습니다. 숭산스님은 체계를 만들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논리적이지 않았고, 항상 이해하기 쉬운 것이었습니다. 매우 직관적이며, 스님께서는 또한 대 용기와, 대 의정, 대 신심을 강조하셨습니다.

I will say this again. Zen Master Seung Sahn always emphasized great question, great courage,and great faith. Why? If you do not ask your own question, if you do not interest yourself sincerely in the teaching. then the teaching is not yours. it just like a makeup on your face. But, if you do have a question, if you do have your inquiry, if you really want to know what you are, then you ask this question: 'What is this?' That’s the great question.

다시 말씀드리면, 스님께서는 대 용기, 대의정, 대 신심을 강조하셨습니다.

왜일까요?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의 의정을 품지 않는다면, 그리고, 가르침에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가르침은 여러분의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얼굴에 화장을 하는것과 다를바 없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여러분이 의정을 품는다면, 여러분의 의문을 갖는다면, 여러분 자신이 누구인지 정말로 알고자 한다면, 여러분은 바로 이 질문 “이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대의정입니다.

You have to have great courage to go through with whatever karma you see inside, or whatever outside event should happen, so then you really, absolutely must have courage and stay with the question because sometimes it doesn’t bring you happiness right away. It doesn’t bring you satisfaction, it doesn’t bring you seemingly good result right away. But if you are courageous enough, and you deeply believe in your great question, then you have the courage to go through with whatever appears. Then the third important part appears called great faith,

그리고 외면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져도, 내면에서 어떤 업장이 일어난다 해도 뚫고 나갈수 있게 대용기를 가져야합니다. 여러분은 정말로 용기를 가져야 하며, 항상 의정을 품어야합니다. 왜냐하면, 때로는 여러분에게 행복을 바로 가져다주지 않기도 합니다. 여러분에게 만족을, 그리고 눈에 띄는 좋은 결과를 바로 가져다주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용기가 충만하여, 여러분이 진정으로 대 의정을 품는다면,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 세 번째로 중요한 핵심인 대 신심이 나타납니다.

and great faith is not some idea. It is not some religious fervor. It is not something fanatical, fundamental belief system. This great faith is based on experience. It is based on asking the great question, having the courage to stay with it and then the result deep inside makes you absolutely sure that this is the way. That’s what we call faith. Faith is all the transdental experience, something not bound to the senses. Why do you have good reason to believe in it? Because you see the result. If you act based on your faith, what happens to the world? Do people get less suffering or more suffering? Can you take away the roots cause of suffering? Can you produce good result? Can you help people in order to live a more awakened life? That is the the basis of faith.

대신심은 어떤 사상이 아닙니다, 몇 가지 종교적 맹신도 아니고 근본적인 믿음 체계에 대한 열광도 아닙니다. 대 신심은 체험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리고, 대 의정을 바탕으로 하며. 그 신심을 항상 갖도록 하는 용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러면, 깊은 내면에서 결과가 여러분을 정말로 이것이 바로 믿음이구나 하고 확신을 갖게 합니다. 그것이 바로 대 신심입니다. 신심은 초월적인 체험이고, 감각에 묶여있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은 왜 그것을 아주 믿게 되나요? 왜냐하면, 여러분은 체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신심을 토대로 행동을 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이 덜 고통 받을까요, 아니면 더 고통을 받을까요? 고통의 근본원인을 없애버릴 수 있을까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좀 더 깨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요? 그것이 신심의 토대입니다.

We can talk about it for a very, very long time, but I really suggest that people visit our mediation centers. We have wonderful temples here in Korea in Europe and America as well. People should be able to travel to get to know them. Hopefully, we practice together one day with those who hear this.

우리는 이것에 대해 매우 길게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말로 사람들에게 우리 참선센터를 방문하도록 권합니다. 우리는 여기 한국에, 유럽에, 그리고 미국에 아주 훌륭한 절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행을 하며, 그러한 것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방송을 듣고 있는 분들과 함께 언젠가 같이 수행하기를 바랍니다.

no11.

청안스님은 어떤 식으로 수행을 하셨는지요?

Well I really try to practice all the forms of bowing, chanting and sitting but that is just the form. Having the 참선 and having some other technique like 화두, and in doing a lot of 기도, reciting 대비주 능엄주 예불문 all these things. This is very important, but these are only techniques. The original teaching does not depend on techniques. So, if we do not take the practice outside of the temple gate, it becomes very limited. True practice never starts and never ends, it’s 24 hours a day keeping clear mind, staying with the question, staying with open eyes, open ears, and open mind. Keeping the mind clear--that never stops. How you do it depends on your situation. In the temple, you do formal practice, in your own room you can meditate, but when you are walking in the street, then just walk, when you are reading, just read. When you are doing something, just trying help other people, then that is the original practice: staying clear and being beneficial.

저는 절하고 염불하고 참선하는 모든 면을 수행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형태입니다. 그래서 참선하는 것, 화두처럼 다른 어떤 기술적인 것을 하는것, 그리고, 많은 기도를 함에 있어서, 대비주, 능엄주, 예불문을 암송하는 수행들 모두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단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가르침은 기술적인 것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절 밖에서 수행을 하지 않는다면, 수행은 한계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래서 진정한 수행은 시작도, 끝도 없는 것입니다. 하루24시간 내내 맑은 마음을 가지고, 의정을 항상 품으며, 항상 눈과 귀와 마음을 바로 뜨는 것입니다. 마음이 항상 깨어있게 하시고, 절대로 멈추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상황에 맞게 하십시오. 절에 있으면 보통의 수행을 하세요. 집에 있으면 참선을 하시구요, 거리에서 걷고 있으면, 그대로 걸으세요. 책을 읽고 있으면 그대로 책을 읽으세요. 무언가를 할 때 다른 사람을 도와주려고 하세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수행입니다. 항상 깨어 있어서 중생을 이롭게 하십시오.

no13

수행을 하면서 어려움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 있었는지요?

Well sometimes you get distracted. sometimes there are too many details to deal with. Sometimes you have too many emails to answer, or sometimes you have angry or frustrated people to deal with or sometimes your situation becomes very very difficult. That’s all wonderful. These difficulties teach us, they become our teachers. If we relate them correctly, difficulties stop being difficulties. You know what is the biggest hindrance? When you forget the Way. Your situation becomes too good, and you forget the Way. We should actually thank those people who give us a hard time because they make us wake up to the true nature of this reality.

때로는, 여러분 정신이 산만해지기도 하죠.. 때로는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기도 합니다.

때로는 답장을 보내야 하는 이메일도 무지 많기도 하죠.. 때로는 화내거나, 좌절하는 사람들을 대하여만 합니다. 때로는, 여러분의 상황이 매우, 매우 어렵게 되기도 합니다. 이 모든 훌륭한 어려움들이 우리들을 가르쳐 줍니다. 이 어려움들이 우리의 스승이 됩니다. 우리가 그것들에 올바르게 대응할 때, 어려움은 더 이상 어려움이 아닙니다. 가장 큰 장애는, “도”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상황이 너무나 좋아서 “도“ 즉, 깨달음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어렵게 하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고마워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로 하여금 이 본성의 참 성품에 깨어나도록 만들어 주니까 말이에요.

예를 들어주시겠습니까?

Well what happens mostly during sitting meditation practing? Your knees start to hurt. so then you have to perceive it very clearly. Do your knees warn you about something? Or you ate the wrong food? You didn’t drink enough water? In other words, is the pain good pain or bad pain? so for instance I sit. My knees start to hurt. I really have to perceive clearly where does this pain come from and act correctly.

앉아서 참선을 하는 동안에 주로 무슨 일이 일어나나요? 여러분의 무릎이 아프기 시작하면 여러분은 매우 분명하게 알아채야합니다. 무릎이 여러분에게 알려주었나요? 잘못된 음식을 먹었나요? 물을 충분히 마시지 않았나요? 즉, 그 고통이 좋은 것인가요, 아니면 안 좋은 것인가요? 예를 들어, 제가 앉았을 때, 제 무릎이 아프기 시작하면, 저는 어디서 그 아픔이 나오는지 알아채야 합니다.

no14

불교를 불자가 아닌 분에게 어떤 식으로 접근하면 좋을까요?

First of all we shouldn’t disturb them with our own insights. so if they don't have religion, they don’t want one, don't try to give them religion, because they refuse it.

similarly, if they have the religion, don’t try to be judgemental about it and try to give them a new one or better one, which you think they should believe. What can you actually do? you can only answer those question that they are interested in.

먼저 우리자신의 안목으로 그들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들이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원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종교를 심어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거부를 하기 때문이죠. 유사하게, 그들이 종교를 가지고 있다면, 그들의 종교에 대해서 평가하거나, 여러분이 믿고 있는 새로운 어떤 것, 보다 좋은 어떤 것을 주려고해서는 안됩니다. 실제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관심사에 현명하게 대답해주는 것뿐입니다.

Most of all, be friendly. Be polite. Engage in natural conversation and don’t be a Buddhist missionary. Even if you are a monk or nun or buddhist teacer, international dharma instructor of any sorts. Do not talk about the Dharma unless they want to hear it.

See this: people always have problems, people always have questions and when you answer them, then they are wondering: Wow, this is a good answer! How can you say this? This is a good way of acting. How can you do this? Then they are open enough to hear something about the dharma and then you talk about the dharma in a way. The gates are already open, the minds are already receptive, and then you can actually make a positive difference.

먼저 ,다정하고 예의바르게 자연스레 대화에 참여하십시오. 불교 전법사가 되려 하지 마십시요.

여러분이 스님 혹은 국제포교사 또는 그 어떤 무엇이더라도, 그들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부처님 말씀에 대해 이야기 하지 마세요.

사람들은 항상 걱정들, 그리고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이 그들에게 대답을 해주시면, 그들은 여러분의 대답에 감탄하게 되고 어떻게 이런 좋은 말을 해줄 수 있냐며 부처님 말씀에 대하여 듣고 싶어 마음을 열게 됩니다. 그때 여러분이 말씀해주시면, 그들의 마음이 이미 열렸고, 수용적이어서, 여러분은 정말로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no15.

스님.. 방한의 주된 목적은 무엇인지요?

I have many purposes here in Korea. one of them is studying language, that I would understand and respond in Korean wonderfully. I would be going to 동국 University to do that, and like I said earlier, the other and also very important purpose is to express our loyalty and true belonging to the Korean tradition by registering 원광사 as the branch temple of 수덕사. That is something that can only be done if I am here in person and I am ready to do that. Besides that, I also continue to practice visiting various temples and also teaching where I am requested to do so.

여기 한국에서 많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들 중의 하나는 한국어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어를 훌륭하게 이해하고 대답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국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려고 합니다. 그리고 앞서 얘기한 것처럼, 다른 중요한 목적중의 하나는 원광사를 수덕사의 부속 사찰로 등록함으로써 한국전통에 속하면서, 존경을 표하고 싶습니다. 제가 여기에 직접 와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하도록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고, 게다가, 여러 사찰을 방문하면서, 계속 수행을 하고, 법문요청이 있는 곳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입니다.

no16

스님의 추진하고자 하는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Yes, of course! I mean everybody has plans, and though monks are not supposed to have that many plans once you look at what you have to do realistically, then you plan ahead. So, I plan to continue to serve as bridge between Korean tradition and Hungarian and of course other countries. So, I continue to practice, teach and build Won Kwang Sa temple further. I know the limit of time. I am through half of my life. I want to improve quality rather than quantity.

네, 물론, ... 모든 사람들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님들은 많은 것들은 계획하지는 않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해야 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돌아보고 나서는 미리 계획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계속해서 한국전통과 헝가리, 그리고 여러 다른 나라들과의 다리역할을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더욱더 수행하고, 가르치고, 이 원광사 불사에 박차를 가하는 것입니다. 저는 시간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 인생의 절반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양보다는 질을 더욱더 향상시키고 싶습니다.

so, i try to sit in the winter 결제 the 동안거 here in Korea and then invite excellent monks to come to Hungary next year and then continue living and building in 원광사. Then coming back to Korea to practice further. This is plenty, and although I can see the limit what I am able to do this lifetime, this is still a good perspective isn’t it?

그래서 동안거 결제도 여기 한국에서 하려고 하구요, 훌륭하신 스님들을 내년에 헝가리에 초청하고, 그런 다음 원광사에서 거주하면서 계속 원광사를 지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한국에 다시 와서, 더욱더 수행을 할 겁니다. 많아 보입니다. 그리고 비록 제가 살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의 한계를 알지만, 이것은 여전히 좋은 미래설계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no17.

불교방송이 22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조언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First of all, I wish to congratulate sincerely BBS and all its helpers that this 방송 can exist. It’s really important, not just because at this point I am on air. That's not the point the point here. Without media, this teaching doesn’t get to people in the 21st century. We have to realized people are consuming media just like food or other services. So, it’s very important to have the Buddhist teaching in this digitized and broadcast form, and BBS is doing great job with that. So, please continue doing that so that all the 불자님 and all those who are listening to the radio anyway. They could understand something which can improve their minds, which can help them get a clearer perception of this life, while we are here. What is a human being? BBS and other Buddhist media they are indispensible in this matter. So please continue, no matter how difficult it seems at some point.

우선, bbs 방송국과 이를 돕는 모든 이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분들로 인해서 방송국이 있게 되었습니다. 방송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시점에 제가 방송을 하고 있기때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중요한 것은, 방송매체 없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21세기의 사람들에게 전달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음식과 다른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처럼 방송매체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방송매체를 통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얻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bbs 방송국은 이 일을 매우 잘하고 있습니다. 계속 잘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bbs 방송국이 이 일을 꾸준히 해서, 모든 불자님, 이 라디오 방송을 듣고 계시는 분,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해서, 마음을 향상시키고, 좀 더 깨친 마음으로 삶을 살수있게 도와 주셨으면 합니다. 불교방송국과 다른 방송매체들은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계속 해나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no18.

sns를 활용해 우리 방송에서도 문자를 보냅니다.

That’s good. you know, Everyday you get the SNS from Buddha.

좋군요... 매일 부처님으로부터 매일 문자를 받는 거군요....하하

no18.

sns를 활용한 포교방안에 있어서 조언할 부분이 있으시다면?

First, my advice is don’t expect any magic from SNS. Social networks are very fashionable. They are very high rated - for now. You know the Stock Exchange. You can put a lot of information in digitized form. For instance, 원광사 also has a Facebook account. Why? Because people look at it quite a lot. Nonetheless, we should remind ourselves that thirty years ago there were no social networks, especially not in a digitized form. Maybe in 30 years, we will not have social networks either. So, what is important is real human relationships and the real, completely trustful Sanga, belonging together and because of that, I consider SNS important but secondary. Real human relationships are important. You cannot teach somebody just over the network. We have to have the personal encounter and relationship that would be really sustainable over time, and SNS is the next medium. It’s okay if we go into it. We have a website. We have facebook. We have media. We are pretty much into that, but we don't expect any magic from it. It’s not gonna happen.

우선, 제 조언은, sns에서 어떤 요술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쇼셜 네트웤은 매우 유행적이고, 또한 매우 인기가 높습니다. 주식거래소에서도요. 여러분은 아주 많은 정보들을 디지털화된 양식에 게재 할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원광사도 페이스북 계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자주 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30년전에 어떤 쇼셜네트웤도 없었다는 것을 떠올려야 합니다. 아마, 30년후에는 쇼셜 네트웤이 또한, 없을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진정한 인간관계 그리고, 완전히 신뢰하는 승가, 그리고, 함께 어울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sns는 중요하지만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진정한 인간관계는 중요합니다. 단지 네트웤을 통하여 누구를 가르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직접적인 만남과 관계를 가져야 하며, 이것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공고해 질 것입니다. 쇼셜네트웤은 부차적입니다. 우리가 그곳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웹사이트, 페이스북, 미디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꽤 많이 이러한 것들을 이용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떤 요술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 요술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no19.

끝으로 청안스님께서 가장 추천 하고 싶은 부처님 말씀이 계신다면?

Yeah, see as I am reading this question, the Dharmapada came up and the simplicity and the clarity of the Buddha’s teaching in the Dharmapada. Espeically two lines: "war doesn’t make peace. only peace can create peace. Hatred cannot take away hatred. Only love can take away hatred." I think this is the last word that I want to say here, because everybody in their individual lives, in their family, in their nation, in their countries and continents can see that if you don’t have a peaceful mind, peace cannot be created, and wars never bring us peace but only suffering

Likewise, if we do not develop love mind, then hatred will never disappear. So, I sincerely hope that we also try to see what we truly are, attain our true self and save all beings from suffering by creating a world where we can deal with only birth, old age, sickness and death and not the man-made suffering, which is on top of all this. If we look at the world`s problems, birth, all the sickness and death are a very a small part. In fact they are an insignificantly small part of the problems that we have to deal with day to day. The four misfortunes, as, the teaching says, cannot be taken away once you are born, but everything else can be cleaned up and everything can be taken away, all the other dualistic tendencies of our minds. They can be alleviated and cleaned up, that means we have a job to do, ladies and gentlemen.

I hope we will be all together to do it. Thank you very much.

제가 이 질문을 보았을 때 법구경이 떠올랐습니다. 간결하고 명확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법구경에 있습니다. 특히 두 줄에 걸쳐서 잘 나와 있습니다. “전쟁은 평화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오직 평화만이 평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미움은 미움을 없앨 수가 없으며, 오직 사랑만이 미움을 없앨수가 있다” 이것이 제가 여기서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삶속에서, 가정에서, 나라에서, 평화스러운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면, 평화는 이루어지지 않으며, 전쟁은 우리에게 평화를 절대로 가져다주지 않고, 오직 고통만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알수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지 않는다면, 미워하는 마음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로 바라 건데.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가 진정 무엇인지를 알려고 해야합니다. 우리의 자성을 깨닫고, .
“생, 노, 병, 사“ 를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듦으로써, 고통받는 온 인류를 구해야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문제들을 봅니다. 태어나고, 아파하고, 죽는 것은 매우 작은 부분입니다.

사실, 그것들은 우리가 매일매일 다뤄야 하는 문제들 중에 아주 보잘것없이 작은 부분입니다. 네가지 “고“는 부처님의 말씀대로, 태어나면서부터 우리에게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깨끗해지고, 없어지고, 그리고 둘로 보는 마음 또한 사라질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해야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이 모든 것들을 같이 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finished-- 합장 삼배 ()()()





 

의견 2
다선
감사합니다()   12-06-04 20:27  답변
은영이
법문 감사합니다,관세음보살   12-06-08 13:26  답변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