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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May 1 수원 용주사 2
 작성자: 가람지기  2010-07-28 13:45
조회 : 10,135  

Suwon, Yoongjoosa

2010 May 1

수원 용주사 2010년 5월 1일

 

Chong An Sunim: Good evening, everybody.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I feel deeply honored and privileged to speak before all of you and would like to sincerely appreciate the invitation of the Yoongjoosa Juji Sunim.

이렇게 여러분들 앞에서 법문을 하게 큰영광으로 생각하며 또한 초청해주신
용주사 주지스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I truly believe that it is due to our previous good karma that we can meet and practice together and share the Dharma.

저는 우리가 전생에 지은 선업으로 이렇게 만나고 수행하며
법을 나눌수 있는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When that began, we don't know. When that ends, we don't know.
One thing we should know, that as long as we maintain our joint effort in the Dharma, it will be there.

언제 그것이 시작되었는지 언제 그것이 끝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불법안에서 함께 구도정진하는 한
계속 그러할것이라는 것입니다.

Long time ago in China, our beloved Sixth Patriarch, Hui Neng,
experienced a wonderful event.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는 옛날 중국의 육조 혜능선사께서
경험하신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He almost got killed because he got the Buddhas' robe and bowl. Many monks wanted these objects. One of them started to chase him.

육조 혜능선사께서는 전법의 표시로 가사와 발우를 전해 받으셨고
이것 때문에 죽임을 당할뻔 하셨습니다.
많은 스님들이 이것을 원했고 심지어 어떤 스님은 혜능선사를 추격하기도 했습니다.

So when the Sixth Patriarch realized what this robe and bowl is about,
he destroyed them. The spirit of Zen is not in the stick.
The Buddhas’ mind is not in the robe and the bowl.

육조선사께서는 가사와 발우 때문에 이런일이 생기는것을 보시고서는
그것을 가차없이 없애버리셨습니다.
선의 본질은 주장자에 있는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마음은 가사와 발우에 있지 않습니다.

Out of the great work of Hui Neng, the Five Schools of Zen appeared.

혜능선사의 위업으로부터 이후 이른바 5가칠종이 형성됩니다.

(5家七宗: 혜능이후 중국불교의 선종을 가풍의 차이에 따라 분류한 것으로
남종선 유파의 총칭. 혜능선사는 남종선의 비조임)

From the Buddha until the Sixth Patriarch, there was only a single line of transmission.

부처님으로부터 육조까지 오직 한 전법의 법통이 있었을 뿐이었고

This took 34 generations and then Buddhism spread in China like an explosion,
later to
Korea, Japan and many other countries.

이 법통은 34대를 거쳐내려오다 불교가 중국에서 거의 폭발적으로 전파되었고
후에 한국과 중국 그리고 또 다른 많은 나라로 퍼졌습니다.

How can this tradition teach so many people and these days also westerners?

그러면 어떻게 이런 전통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가르칠수 있고 또 오늘날
서양사람들에게도 가르침을 줄 수 있을까요?

Even before the Sixth Patriarch, the true spirit of Zen did not depend on culture, language, skin color or creed.

사실 육조이전에도 진정한 선의 본질은 문화 ,언어, 인종 그리고
종교에 구애받는것이 아니였습니다.

Zen Master Joju had great teaching stories, I will quote one of them.

이와 관련해서 조주선사께서 남기신 훌륭한 가르침을 하나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One day, one monk who just entered the monastery visited him, and said
"Zen master please teach me". Joju asked him, "Where did you come from?"

하루는 수행을 막 시작한 스님이 조주선사를 방문해 가르침을 구했습니다.
“선사님 가르침을 주십시오” 조주선사가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어디에서 왔는가?”

The monk replied, "From the north". Then Joju said, "Go, drink tea!"

그러자 그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북쪽에서 왔습니다” 조주선사왈 “ 그래, 가서 차나 마시게”

The next new monk arrived and also asked for the teaching.

다음 스님이 도착해서 가르침을 구했습니다.

He was also asked by Joju where he had come from.

조주선사는 그 스님에게도 어디에서 왔느냐고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From the south, Sir.” Then Joju also said to him, "Go, drink tea!".

“남쪽에서 왔습니다 선사님” 그러자 그 스님에게도 똑같이 그래,
“가서 차나 마시게”
하셨습니다.

The attendant witnessed all these, and he had a big doubt in his mind.

시자스님이 그걸 다 보고 있다가 큰 의문이 생겼겠지요.

When the second monk left, the attendant asked Joju,
"Zen Master, can I also ask a question?" "Sure". The first monk came from the north, you said to him, ‘Go drink tea!’ The second monk came from the south, you also said to him ‘Go drink tea!’. Why?”

두 번째 스님이 나가자 시자스님이 조주선사에게 물었습니다.
“선사님. 제가 뭘 좀 여쭤봐도 될까요?” “그래라” “첫번째 스님은 북쪽에서 왔는데
가서 차나 마시라고 하시고 또 두 번째 스님은 남쪽에서 왔는데 또 차나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뭔지요?”

And Joju said, "Attendant!". "Yes Sir". "Go, drink tea!"

그러자 조주선사가 시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시자야 너도 가서 차나 마셔라.”

This is why Zen can be taught everywhere, whether it is the north, the east,
the south or the west.

이것이 바로 왜 선이 동서남북 관계없이 어디에서나 가르쳐 질 수 있는 이유입니다.

Our tradition is very precious. It shows us as we are.

우리의 이러한 전통은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Sometimes we, human beings, believe that we own this planet. We are the hosts.

가끔씩 우리 인간들은 우리가 이 지구를 소유하고 있고 또 주인이라고 믿습니다.

Even the Buddha's story shows very clearly that we are guests here.

부처님의 이야기를 보아도 우리는 이곳에서 방문객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We are guests here on a pilgrimage.

우리는 순례중에 있는 방문객입니다.

It begins when we are born, it ends when we die. That's what we believe.

이것은 우리가 태어나면서 시작되고 또 죽으면서 끝이 납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렇다고 믿고 있는 것이지요.

But when we are born again, it continues and when we die again it comes to
disrupt ends. .

하지만 우리가 다시 태어남으로 이것은 지속되고 또 우리가 다시 죽을때
중단되어 끝이 납니다.

We repeat this pilgrimage life time after lifetime wherever we are born.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순례의 삶을 세세생생 태어나는곳마다 반복하게 됩니다.

When the Buddha realized the four great misfortunes,
he just realized how we exist: we are born, grow up, get old, sick and we die.

부처님께서 인생의 네가지 고통을 깨달으셨을때 바로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
깨달으셨던 것입니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고 병들며 죽는다.

Most human beings are not ready to acknowledge this.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인정하려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Many people inside believe, “Maybe I am an exception, maybe it happens to everybody but not to me, maybe everybody else goes but not me, maybe everybody else is impermanent and a pilgrim here, but maybe I am the host and I can stay.”

많은 사람들이 속으로는 이렇게 믿고 있을것입니다,
“아마 딴사람들은 그럴지 몰라도 난 좀 다를걸.
아마 딴사람들은 그렇게 가더라도 나는 아닐꺼야.
아마 딴사람들은 덧없이 무상하고 또 이곳에서 순례자로 살지 몰라도
난 아마 주인으로 이곳에서 살수 있을꺼야“.

Fortunately, the Dharma is valid for all beings without an exception.
So the question is, how do we use our pilgrimage?

다행스럽게도 법은 모든중생에게 예외없이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순례를 이용할수 있을까요?

First of all we have to understand that everybody was born in a palace.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모두가 각자의 궁전에 태어났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This is the house where you saw daylight first, whether it is big house or small house, whether you like it or not, the home environment holds and activates all your previous karma.

이 집에서 여러분들은 하루를 맞이하고 그것이 큰집이든 작은집이든 또는 좋든 싫든
여러분의 집안환경은 바로 여러분의 전생의 업이 그대로 반영되어 작용하는곳입니다.

If you do not leave that, you cannot start on your own way.

그곳을 떠나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자신의 길을 갈수 없습니다.

So, if you are a lay person as most of you are here, you may ask, “What's going to happen to my family, my husband, my wife and my children?”

이곳에 계신 대부분의 분들이 그렇듯이 재가신자라면 아마 ‘그럼 내가족, 내남편, 내아내 그리고 내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하는 질문이 생기겠지요.

 

Very few of us in society are able to do the ‘chulga’ or leaving home physically,
and I am not asking you to do that. I am asking you to do it in your mind.

사회에서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이 출가를 하거나 집을 떠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요청하는것은 마음으로부터 그렇게 하라는 것이지요.

In your mind, you leave your past karma behind, you leave your ideas on the present behind, you leave concerns and worries for the future behind, and see how we can wake up in this moment, how we can help each other do that in this moment.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과거의 업을 저버리고, 현재의 잡다한 아이디어를 저버리고,
미래에 대한 염려와 걱정을 저버리고 우리가 현재 이순간에 어떻게 깨어 있을것이가를 보고 또 우리가 지금 이순간 어떻게 서로를 도울수 있을까를 보라는 말입니다.

When we attain the nature of this existence, that changes our perspective.

만약 우리가 존재의 참 성품을 얻게된다면 이것은 세상을 보는 눈을 바꿉니다.

We are impermanent, we are interdependent and what we think of as ‘I’,
this does not exist as solid entity.

우리는 무상하며 서로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고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이 ‘나’라는 것은
손에 잡히는 어떤 독립된 객체가 아닙니다.

This is why it is so precious to ask the question: “What am I?”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 하고 질문하는 것이 왜 그렇게 소중한가 하는 것이지요.

Because this is not a dogma. It is the way of exploration.

왜냐하면 이것은 종교적인 신조나 신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탐구의 길입니다.

We do not have to accept anybody's thinking. You can use your own experience.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 스스로의 경험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The kanhwasoen, which our tradition has conveyed for hundreds of years is our true treasure. It helps you experience your true self.

우리의 이러한 전통이 간화선을 통해 수백년간 면면히 이어져내려왔고
이것은 우리가 가진 진정한 보물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 전통은 진정한 우리자신을 체험하게 해줍니다.

If you look inside, what do you find?

여러분들은 내면을 관하실 때 무엇을 발견하십니까?

The finding is that the body has drivers, your thoughts, feelings, perceptions, impulses, consciousness. If you look deeper into this, you find many kinds of these.

우리몸에는 생각,감정,지각,의지,의식과 같은 운전수가 있다는것입니다.
더 깊이 관하게 되면 이와 같은것들을 좀더 많이 발견하실수 있습니다.

What you repeat, what you identify with, what you attached to is seen and felt as your ‘I’.

여러분들이 살면서 반복하는것들, 자기자신이라고 정체성을 부여하는것들,
집착하는것들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나‘로 보여지고 느껴지는것입니다.

This ‘I’ feels like your palace, something to adorn, something to protect,
and yet the Buddhas and Patriarchs teach that you should leave this.
So, leave this ‘I’. You do not have to leave your physical home.

이 ‘나’를 우리는 궁전으로 또 뭔가 치장해야할것 뭔가 보호해야할것으로 느끼지만
부처님과 조사님들께서는 우리가 반드시 버려야할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나’를 버리십시오. 세속의 집을 버리실 필요는 없습니다.

Why? Because this ‘I’ is burning. It is burning with the fire of anger, desire and ignorance. The notion of ‘I’ or ego would be harmless unless it was burning with the fire of anger, desire and ignorance--and it is, unfortunately. So we have to do something.

왜냐하면 이 ‘나’가 불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나‘는 탐,진,치의 불로 타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또는 에고라는 개념은 사실 탐,진,치로 타고 있지 않다면 해가 없지만
유감스럽게도 항상 이것들로 불타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것에 대응해서 뭔가를 해야합니다.

If we start practicing and going beyond ‘I-my-me’, we attain what the Heart Sutra calls extinction.

수행을 시작하셔서 언젠가 아상을 극복하시면 반야심경에서 일컫는 다해
더 이상 존재하지않는경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Extinction is not just sutra speech. It is based on the experience of those who got there.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경지는 단순히 경전에서만 말하는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 경지에 도달하셨던 분들의 경험에 의한 것입니다.

In the west, many people are very afraid of this.

서양에서는 많은사람들이 이러한 상태를 두려워합니다.

There is a man, a philosopher, who said, “I think, therefore I am”.
When your thinking is gone, and your ‘I-my-me’ is extinguished, then what?

서양의 어떤 철학자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의 생각이 없어지고 또 여러분들의 ‘나에 관한 모든 것’들이 꺼져버린다면
그럼 어떻게 되겠습니까?

Most people in the west would answer logically, “Then I don't exist.” For westerns, mostly it means death. You and I, most of us here know that this is completely wrong.

대다수의 서양사람들은 ‘그럼 나는 존재하지않지요‘라고 논리에 맞는 이야기를
할것입니다.
서양인들에게 이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여기 계시는 대다수의 분들과
저는 이것이 틀렸다는것을 압니다.

When we attain the mind which doesn't think, which is clear like space and clear like mirror, we call that ‘don't know’. This ‘don't know’ has no appearance and no disappearance, no life and death.

우리가 허공처럼 거울처럼 맑은 생각을 떠난 마음을 얻는다면 이 경지를 바로 ‘모른다‘ 라고 합니다. 이 ’모른다’는 생겨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나고 죽는것도 없습니다.

And as it is clear like mirror and clear like space, it shows the world and us as we are. In this mirror, we can see clearly the truth, we can perceive cause and effect.

이 마음상태는 거울처럼 허공처럼 맑고 청정하기 때문에 세상과 우리를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 거울을 통해 우리는 진실을 확실하게 볼 수 있고 또 인과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This is very important. Instead of beliefs and ideas, we have to see the results of our own actions. Without that, we can't take true responsibility for our lives on this earth.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신념이나 아이디어 대신에 우리는 우리행위의 결과를 직시해야합니다.
그것없이는 이 지구상에서 우리 삶에 대한 진정한 책임을 다할수 없습니다.

If you look around, our suffering comes exactly from this blindness, which results in ignorance, which results in suffering.

주위를 둘러보시면 우리의 고통이 바로 보지못하는데서 온다는것을 아실것입니다.
보지못하는 것은 무명과 고통으로 귀결됩니다.

So we are pilgrims and guests on this planet. Where do we go? What is the direction of so many repetitions of being born and dying, being born and dying? What is the direction? What is the point? If you just think about it, that hundreds of thousand times we are doing very similar things in various bodies, that is really tiring!

우리는 이 지구라는 행성의 순례자들이며 방문객들입니다.
우리는 어디로 갑니까? 수없이 반복되는 생과사의 방향은 무엇입니까?
그것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수천만번씩 몸을 바꿔가며 비슷한 일들을 한다고 생각해보시면
참으로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So how do we wake up from that? What do we really do with our lives? When our mind connects to the fetus, and we are born, a sentient being is born. But at the same time, a potential Buddha is born.

어떻게하면 이 반복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의 마음이 태아에 연결되는 순간 우리는 태어납니다 즉 중생이 태어나는 것이지요 그와 동시에 잠재적인 부처님도 동시에 태어납니다.

The Buddha teaches us that all beings have Buddha nature, all of us, without exception. We can attain what the Buddha has attained. So how do we use our lives? Where do we go? Where does our compass point?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예외없이 말이지요.
부처님께서 이루신것을 우리도 이룰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인생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까요?
우리는 어디로 갑니까? 우리의 나침반은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What we want to get, we get. Look around the world. Is this what we want? Somehow we shaped this world into this form, so something is not right.

우리가 원하는것을 우리는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세상을 한번 보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입니까? 어쨌든 우리는 이 세상을 이런식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니 뭔가 잘못된것이지요.

We may not be using our Buddha nature so clearly. The teaching is very clear:
look inside! Let's attain what we truly are. Based on this clear foundation, we can help this world and we can help each other.

우리가 가진 불성을 분명하게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일것니다.
가르침은 아주 명료합니다 즉 내면을 관하라는 것이지요.
진정으로 우리자신인것을 성취합시다. 이러한 명확한 기초위에 세상도 도울 수 있고
또 서로를 도울 수 있게됩니다.

So much about introduction, and now I would like to welcome your questions.
If you have any questions, please raise your hand. While you are thinking whether you should ask a question or not, I am telling you why you should.

서문이 길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질문이 있으시면 손을 들고 질문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질문을 할까 말까 생각하고 있는 동안 왜 여러분들이 질문을 해야 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Because there are two kinds of teaching. One is what I am prepared to give and the second is what you need to hear. The second is more important. The second comes from your questions, not from this mind (points at his head).

왜냐하면 두가지의 가르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제가 준비한것이고 두 번째는
여러분들이 들으셔야 하는것입니다. 두 번째가 아주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여러분들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머리를 가르키며) 여러분들의 질문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Question: Thank you for your Dharma Talk. I would like to ask a very stupid question so that other people can ask you further questions. During your Dharma Talk you said that we obtain what we do not really want. However, I am wondering as a not enlightened person, if I have to fight against those things that we have against our will, or just leave them behind and practice or just ignore whatever we have. Is there any way to make decision or choices?

 

스님법문 잘들었습니다. 다른분들이 질문을 할수있도록 무식한 질문하나 올리겠습니다.

아까 마지막에 스님께서 하신말씀중에 우리가 이세상에 태어나서 존재하고 가지고 있는것들이 내마음에 드는것이 아니고 내가 원하는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러한것들을 놓고 아직 깨닫지 못한사람으로서 그대상들과 내가 투쟁을 해야되는지 아니면 그를 회피하고 돌아서서 그냥 수행을 해야하는지 어떤선택을 해야하는지 가르켜주시기 바랍니다.

 

Chong An Sunim: Sure. First I have to ask you: please don't fight it, don't ignore it, don't leave it behind.

물론입니다. 첫 번째로 제가 말씀드릴것은 투쟁하지도 마시고, 회피하지도 마시고 또
그냥 돌아서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The Buddha says very clearly that war can never be extinguished by war. Please don't fight it, because human beings have been doing that for thousands of years. Look at this. We never stop making wars. We only make things worse.

부처님께서는 결코 전쟁은 전쟁으로 종식할수없다고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투쟁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인간은 이러한 투쟁을 벌써 수천년간 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간과하시면 안됩니다. 우리가 전쟁을 중단할 수 있었던 적은 결코없었습니다.
그대신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The next option is ignoring it. Human beings kept ignoring the waste that we dumped into the sea and keep doing that. Now in the Pacific as well as in the Atlantic Ocean, we have huge fields of garbage which are sometimes meters thick and bigger than the state of California. It is solid garbage.

다음선택으로 무시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인간들은 쓰레기를 마구 바다에 버렸고 이 사실을 무시한채 계속
쓰레기를 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대평양이나 대서양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크기보다 더 크고
두께가 몇미터씩되는 쓰레기더미가 있습니다. 고체 쓰레기 더미가요.

We kept ignoring this, and now we have million tons of garbage, mostly plastic,
and metal and other things that couldn't decompose, and it gets into wildlife, into the sea, the fish, the birds, and eventually into our bodies,
because we kept ignoring it.

이것을 계속 무시해왔다가 지금 우리는 수백만톤의 대부분이 플라스틱, 금속
그리고 기타 분해될수 없는 쓰레기더미를 갖게 되었고 이것들은 야생이나 바다로
흘러들어가 어류과 조류속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우리몸속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무시하고 방치해왔기 때문입니다.

Just practicing and leaving it behind is 50 percent, not 100 percent. If we do practice correctly, then inside and outside become one. So, the trash outside becomes suffering inside. But when our minds become clear, then we can help this world,
so the inside clarity becomes outside clarity and we can clean up the mess we have made.

그냥 다 놔두고 돌아서서 수행만 하신다면 이것은 반정도 밖에 안되고 백퍼센트는 되지 않습니다.
수행을 바로하시면 안과 밖이 하나가 됩니다.
외부의 쓰레기는 내부의 고통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명료해지면
우리는 세상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부의 명료함은
외부로 배어나와 우리는 우리가 초래한 엉망진창의 상황을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So we have to practice, that is very correct, then we have to do our job. That includes cleaning up this planet. From the depth of the seas to the very surface up to the stratosphere, we have a big cleanup to do.

그래서 수행을 해야합니다 그런다음 우리의 할 일을 해야합니다.
그것에는 이 지구를 깨끗하게 하는것도 포함됩니다.
심해의 바다로부터 성층권까지 대대적으로 청소를 해야합니다.

If we do not do that, then our children and grandchildren will have a much a worse planet to live in. So, to the present day in our temples we have three most important activities besides others: Yebul, Ulyoek, Gongyang (practice, work, offering).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아이들 또 그 아이들의 아이들은
이 지구에서 살기가 몹시 힘들어질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오늘날 사찰에서는 여러 가지 활동외에도 가장 중요한 세가지 활동
즉 예불, 운력 그리고 공양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If these three do not happen, the temple cannot exist. This Earth is not different from what it used to be for millions of years, so we have to do our original job as human beings, and we have to do it right, otherwise this Earth cannot take us. We cannot exist on it. The power of the mind shows very clearly. If we just wake up a little more than yesterday, this Earth is already a different place positively. Thank you very much for your question.

이 세가지가 행해지지 않으면 사찰은 지속될 수 없습니다.
이 지구는 수백만년전과 조금도 다를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으로서의 본분사를 행해야하며 또 잘 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지구는 우리를 지탱할 수 없으며 우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마음의 힘은 아주 분명하게 보여집니다.
우리가 어제보다 조금 더 깨어 있다면 이 지구는 조금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어 있을것입니다. 질문에 감사드립니다.

Question: Thank you for your talk. During your talk, you mentioned that in practicing there is no inside and outside. However, many korean Sunims are practicing through kanhwasoen to get Enlightenment, but many people who practice cannot express that they got Enlightenment. Why is that?

 

좋은말씀 고맙습니다. 아까 말씀하시기에 수행을 하는데는
안팎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국의 많은 스님들께서 간화선을 통해서 깨달음에 이르고자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많은분들이 깨달음을 나타내지 못하는 이유가
과연무엇인지 알고싶습니다.

Chong An Sunim: More together action is necessary. Staying in the Soen Bang (Zen Hall) too long is ‘overbreeding’.

좀더 함께하는 행동이 필요하겠지요.
선방에만 너무 오래 앉아있으면 푹 삭을수가 있습니다.

Kyol Che, Hae Jae, each has a function. The mind needs both.

결제와 해제 ,이것은 각각의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은 이 두가지를 다 필요로 합니다.

When you make a sword, sometimes you put it into fire, then hammer it, then it suddenly goes into water, then into fire again, and then into oil, then into fire again. Repeating the same process for months like this makes a good sword. And look,
it is just a piece of metal. How many years do we need for the mind? How many incarnations do we need of Kyol Che, Hae Jae, Kyol Che, Hae Jae?

칼만드는 공정를 보시면 어떤때는 불속에 집어넣고 달구었다가 망치로 벼르고
물에 집어넣어 식힌후 또 불에 집어 넣고 그 다음은 기름속에 이런식으로 같은 과정을
수차례 몇 달동안 반복한후에야 좋은 칼이 만들어 집니다.
금속 한 조각도 이런 과정을 거쳐야합니다. 하물며 우리마음을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세월이 걸리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윤회를 거쳐 결제와 해제를 반복해야 할까요?

During the retreat, closing the mouth is necessary. Not moving body, not moving speech, not moving mind, this is original practice. Then, during Hae Jae time, the body has to move, the mouth has to open, the mind has to help all beings. We must do it.

결제중 묵언이 필요합니다. 부동하는 身口意,이 세가지는 수행의 근본입니다.
그리고나서 해제중에는 몸을 움직이고 입을 열여 말하고 또 마음은 중생을 도와야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지요.

So, attaining the Dharma is 50%, and reattaining correct karma is the other 50%.

그래서 도를 얻는다는것은 사실 반쪽에 불과하고 정업(正業) 즉 자기가 해야할바를 얻는것이 또다른 반쪽을 채우는 것입니다.

Then the Bodhisattva appears, correct action, correct speech and correct mind also appear. Otherwise, only staying in Nirvana is not so good, then after this life cannot have human body.

그러면 보살이 현현하게 되어 바른 행위, 바른 말 그리고 바른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니르바나에만 머물러있는 것은 좋지않습니다
그렇게 산다면 이생이 끝나고 다음생에는 사람의 몸을 받지 못합니다.

Question: I am practicing insight meditation. When I look inside, there are many thoughts, ideas and concepts. Even though I watch what is going on inside, there is the ‘I‘ as the observer. Is there any clear line between the one who perceives and the object? What is the mechanism of observation?

요즘 제속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들은 지켜보는 주시현상을 하고있습니다.
질문은 과연 제안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들을 남을 보듯이 분리해서 보는것이
가능한지요.
관찰자가 관찰대상을 보지만 결국 관찰자도 관찰되는것 아니겠습니까?
지켜보는 의식과 보여지는 대상과 뚜렷한 선이 있는것인지요.
관찰작용에 대한 메카니즘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Chong An Sunim: Gosanim, do not ask about clear lines because it becomes your hindrance. Your clear line would make two, but original mind is only one.

거사님, 의식과 대상사이의 뚜렷한 선에 대해 묻지마십시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거사님에게 장애가 되기 때문입니다.
거사님이 물으신 뚜렷한 선은 양분된 둘을 만듭니다 하지만
본마음은 하나일뿐입니다.

That is why it is important to ask a right question. We are here to train in that.
If you have a lot of thoughts and ideas inside, I can reassure you that you are a human being. All of us have that. To go beyond these ideas, to go beyond the observer what you observe, requires the right path, the right direction.

그래서 바른 질문을 하는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훈련하기위해 이곳에 있는것입니다.
여러 가지 잡다한 생각과 아이디어가 거사님 속에 있다면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렇습니다.
이 생각을 넘어서고 관찰대상을 바라보는 관찰자도 넘어서려면 바른길로 가야하고
바른 방향으로 가야합니다.

When something appears, then ask: ‘Where does this come from?’ Many things appear, then ask: ‘Where do these come from?’ Keep this question. Don't fight your mind. Don't ignore your mind.

어떤것이 마음에 일어나면 이것이 어디에서 왔을까 하고 물으십시오.
잡다한것들이 마음에 일어난다면 이것들은 어디에서 왔을까하고 물으십시오.
이렇게 질문을 계속해나가시고 마음에 대항하여 투쟁하거나 무시하거나 그대로 방치하지 마십시오.

Just ask the right question, and it will act like a magnet, which attracts the little pieces of iron. All your thoughts and all your ideas will return to the Great Question.

올바른 질문을 계속해나가시면 이것은 마치 작은 금속조각을 끌어들이는 자석과 같은
역할을 하게됩니다. 그래서 모든생각과 아이디어들이 큰질문으로 귀착됩니다.

That is why in the old days the Buddhas and Patriarchs said, “The ten thousand Dharmas return to the one.” If you practice like this, then your mind becomes simple and clear. Then only the question remains. When the question itself disappears, you attain the answer to the question where does the one return to.

그래서 예전에 부처님과 조사님들은 ‘만법은 하나로 돌아간다’고 하셨던것입니다.
이렇게 수행하시면 여러분의 마음은 단순해지고 명료해집니다.
그러면 질문만 남습니다. 이 질문자체도 사라지면 ‘이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으실수 있습니다.

If so, then the sky will be really blue and the trees will be really green, and you truly understand your job as a human being. Okay? Do that!

그런 다음에 보는 하늘은 진실로 푸르고 나무도 또한 진실로 푸르를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본분사 즉 인간으로서 할 일을 정말로 아시게 될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십시오.

Question: Actually I have no questions but since you have asked us to ask a question I am going to ask you two questions: 1) Why did you leave home? What is the reason for the Bodhidharma to come from the West to the East?

 

저는 사실 질문할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스님께서 질문을 하라시니 두가지질문을 하겠습니다. 하나는 스님께서 출가하셔서 여기오신 이유가 무엇이며 그리고 달마가 왜 서쪽에서 오셨는지 설명을 해주세요.

Chong An Sunim: Wow, this sounds like my Mom, completely! Why did I leave home? For you! Why did Bodhidharma come to the East ? You should find the true Bodhidharma and ask him. Now I ask you: If you want to find Bodhidharma, where would you look? (applause from the audience)

세상에, 어쩌면 우리어머니께서 하신 질문과 똑같은 질문을 하십니까!
왜 출가를 했냐구요? 보살님을 위해서입니다.
왜 달마대사가 동쪽으로 오셨나구요? 진짜 달마대사를 찾으셔서 그분에게 여쭤보세요. 그럼 저도 질문하나 하겠습니다.
달마대사를 찾으신다면 어디에서 찾으시겠습니까? (청중에서 박수)

Questioner: Either I have to go to the west, or I have to practice like Bodhidharma did, facing the wall.

서쪽으로 가거나 아니면 스님처럼 면벽수행을 해서 만나뵙던가요.

Chong An Sunim: Moving away from here is a mistake, staying here is a also mistake. What can you do?

이 자리에서 나가는것도 큰실수요 이곳에 머무르는것도 큰실수입니다.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Questioner: That is the point of my question.

그게 바로 제 질문의 핵심입니다. 그걸 알고 싶었거든요.

Chong An Sunim: That is why you have to answer.

알고 싶으시면 대답을 해야지요.

Questioner: I understand that!

그건 저도 알아요.

Chong An Sunim: If you understand, then answer!

아신다면 대답을 한번해보십시오.

Question: Even a three-year old baby understands the point. However, as a Buddhist practitioner we have to keep our perception clear. It is difficult. I have tried to find it through sitting meditation however so far I haven't come up with any answer. During your Dharma Talk, you mentioned that we are on the pilgrimage, met together on the way. So I just want to know the answer.

 

세 살먹은 어린아이도 행동과 책으로 또 엄마한테 배워서 다알고 있는데
사람은 계를 지키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도 좌선을 통해서 나를 찾아보려고 애는 쓰지만 확연한 답이 없고 또 스님께서 이렇게 만난것도 과정이라고 하셔서 그과정에 대해 좀더 명확하게 알고 싶습니다.

 

Chong An Sunim: It is much more simple than that. When this Dharma Talk finishes, then we can drink tea.

이것은 보살님이 알고 계시는것보다 훨씬 간단하고 단순합니다.
이 법회가 끝나면 차나 한잔 하시지요.

Question: My job requires a lot of thinking. If I follow the Dharma, I should stop thinking. Should I give up my work?

 

스님법문 감사드립니다. 직장인인데요. 생각이 많이 필요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이 많을수록 법에서는 멀어진다고 하는데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것이 좋을지요.

Chong An Sunim: Gosanim, 50 per cent! I tell you a story, it is a beautiful story of Hotei, the Happy Buddha.

거사님, 50퍼센트!
이와 관련해서 행복한 부처님 포대화상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There was a very bright and wonderful monk going up to the mountain to start a 100-day solo retreat in China. This monk had your mind: I want to stop thinking! I want to attain the Dharma!

옛날 중국에 아주 똑똑하고 훌륭한 스님한분이 100일기도를 하려고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이 스님은 거사님과 똑같이 ‘생각을 멈추자 난 득도하고싶다‘ 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As this monk was walking up the mountain, he saw Hotei coming down. Hotei always had his big bag on his back, never running out of presents, which he kept giving away to children, making them happy.

이 스님이 산을 오르던 중 포대화상이 위에서 내려오는것을 보겠되었습니다.
포대화상은 등에 큰 포대를 지고 다니시며 항상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줘
아이들을 기쁘게 하셨지요.

When this young monk saw Hotei, he made a deep bow, “Sunim, I am so lucky that I could meet you. What a wonderful inyeon. I am starting a 100-day solo retreat and I want to do it right. Please teach me. What kind of mind should I have? What kind of attainment should I practice for?”

스님은 포대화상을 보자 큰절을 올리며 말했습니다.
“스님 이렇게 뵙게 되어 너무나 큰 행운입니다. 너무 좋은 인연입니다.
저는 이제 100일기도를 하려고 하는데 잘하고 싶습니다.
가르침을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요?
어떤 경지에 도달하도록
수행해야하는지요?

Hotei as he was, just let go his bag, which fell on the ground with a big bump.
The young monk saw this and said, “Wow! Thank you so much! How can it be so simple and clear! But please, can I ask one more question?”

포대화상은 늘 그렇듯이 지고있던 포대를 바닥에 쿵소리가 나게 놓았습니다.
젊은 스님이 그걸 보고서는 “와 너무나 감사합니다. 어쩌면 그렇게 간단하고 분명한지요. 그런데 제가 질문 하나를 더 드려도 될까요?”

“Sure!” “After this, what’s next? What should I do?”

Hotei reached for his bag, picked it up from the ground, put it on his shoulder, and walked down the mountain.

"물론이지“ ”그럼 그다음에는요?“ ”그런다음에는 무엇을 해야하는지요?“

포대화상은 땅에 있던 포대를 다시 어깨에 메고 휘적휘적 산을 내려갔습니다.

 

Question: I understand that you are working on the Won Kwang Sa Temple project in Hungary. Do Hungarian people do the same type of chanting, morning and evening ceremony as we do in Korea? Do you also have a Buddhist kindergarden as we have here in Korea? Are there many Hungarian Buddhists?

스님께서 헝가리에 원광사절을 세우신다고 들었는데 헝가리인들도 그곳에서 한국과 똑같은식으로 예불을 올리고 이곳처럼 불교유치원도 운영을 하시는지요?
또 헝가리에는 불교신자가 많이 있는지요?

Chong An Sunim: Gosanim, I have to say that this whole world is a Buddhist kindergarden... (applause from the audience).

거사님, 이 온세상이 모두 부처님의 유치원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청중에서 박수)

Concerning Won Kwang Sa, it is an international Zen temple. There are many nationalities there, and Hungarians are a relative minority most of the time. There are now five nations represented among the residents.

원광사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원광사는 국제선원입니다.
여러나라에서 오신 분들이 수행하고 있으며 헝가리불자는 그중 상대적으로
소수에 속합니다. 현재 원광사에는 5개국에서 오신분들이 상주하고 계십니다.

The official language is English. We chant everything like in Korea, but we add the Heart Sutra also in English. To make the picture complete, we have a Dongango, which follows the solar calendar.

공용어는 영어입니다.
한국 사찰처럼 똑같이 염불하고 단지 반야심경를 영어로 덧붙여서 합니다.
좀더 설명을 드리자면 원광사에서는 양력에 따라 동안거를 하고 있습니다.

The reason is the red-letter days in western culture, so we have our 90-day winter retreat in the first three months of the solar year, from January to April. Also, we have a 100-day Kwanum Kido every summer, as well as shorter retreats and meditation workshops in the two Hae Jae-s. So, we try to do it right.

그 이유는 서양문화에 따른 공휴일때문에 90일 동안거를 양력 1월초부터 4월초까지
삼개월간 실시합니다. 그리고 매해 여름마다 100일 관음기도를 봉행합니다.
그 외에도 단기안거나 두 번의 참선수행워크숍등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여법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Question: I think that so far the questions are too difficult. I am going to ask you a personal question.

너무 어려운것 같아 간단하게 청안스님께 개인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Chong An Sunim: Personal questions are most difficult.

개인적인 질문이 제일 어려운 질문입니다.

Question: You chose the current life after you met Seung Sahn Kunsunim. Are you satisfied with your current life? What if you didn't meet Seung Sahn Kunsunim, you would have a life like us, having job, getting married, or you would follow the other religious life?

숭산큰스님을 만나 뵙고 부처님께 귀의하셔서 지금 승려생활을 하고 계시는데 어느정도 만족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하고 만약에 숭산 큰스님을 만나뵙지 않으셨을경우에는 헝가리에서 평범하게 우리같이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시려는지 아니면 부처님법밖에서 다른 진리를 찾아서 수도자 생활을 하고 계실려는지 궁금합니다.

 

Chong An Sunim: Actually, these are all one question, since both begin with ‘what if’. Let me ask you, if you are not born, how could you ask this question? Or if you were born in another body, what kind of question would you be asking me now? I am sorry, the answer is just as good as the question can be. (Laughter and applause from the audience.)

이 모든 질문들이 다 한가지 질문에 속합니다
왜냐하면 모든질문이 다 ‘만약에’로 시작되니까요. 제가 질문을 하나드리겠습니다.
만약에 거사님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질문을 하실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다른몸을 받아 태어나셨다면 어떤질문을 저에게 하셨을까요?

죄송하지만 질문이 좋은만큼 좋은답변이 나올수 있습니다.(청중석에서 웃음과 박수)

 

Question: I have a very realistic question. In my neighborhood, right next to my house, there is a newly built Christian church. In the church, they teach English,
so my children go to the church to learn English. While they study English,
they get to know each other and understand more. And while I am watching this,
I came to believe that if we accept the diversity in terms of religion, my children can go to church as well as temple. That would be great, but is it possible in reality?

 

스님법문 잘들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저희집옆에 교회가 생겼습니다.
교회에서 영어를 가르켜준다고 해서 우리아이들이 거기에 가서 영어를 배웠습니다.
영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서로가 좀더 이해하고 알게되면서 교회에 가는 경우가 생겼는데 한편으로 보면 교회에 가서 좋은것도 보고 또 부처님앞에 와서 좋은법도 따르고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요?

 

Chong An Sunim: Frankly, Gosanim, without prejudice, I advise you that your children go to the language school. You know, if you need a doctor, you go to the hospital. Doctors do work in hospitals. If you want your car fixed, you have to go to the car center, because mechanics work in car centers. Now, who is working in churches, who is working in hospitals and language schools? I think that is all clear.

거사님, 선입견없이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자녀분들을 어학원에 보내시는것이 좋을것같군요. 의사가 필요하시면 병원에 가야합니다. 의사들은 병원에서 일합니다. 차를 고치려면 카센터에 가야합니다 왜냐하면 정비공은 카센터에서 일하니까요.
그렇다면 지금 교회에서는 누가 일합니까? 병원이나 어학원에는 누가 일하고 있습니까? 모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됩니다.

Won Kwang Sa is six kilometers from the seat of Catholic church in the entire Carpathian Basin, which has four countries. I understand the religious diversity and I support it. We have very good relationship with Catholics in the nearby city, Esztergom.

원광사에서 6킬로미터 떨어진곳에는 4개국이 국경을 나누고 있는 전체 카르파티언 분지내에서 중심이 되는 카톨릭성당의 본산이 있습니다.
종교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또 저는 그것을 지지합니다.
원광사는 인근도시인 에스테르곰에 있는 성당과 좋은 관계에 있습니다.

But we do not support religious diversity by sending our children to the church to study English. When I go to the Esztergom Basilica, I duly bow before their altar. When we visit each other's tradition, we treat each other with utmost respect. But the church is not a language school and the language school is not the church either.

하지만 아이들을 교회에 보내 영어를 배우게하는 것이 종교의 다양성을 지지하는것은
아닙니다. 제가 에스테르곰에 있는 대성당에(바질리카) 가면 예법에 맞게 제단앞에 머리를 숙입니다. 
서로의 전통이 행해지는 곳을 방문하면 서로에게 깊은 존경으로 대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어학원이 아니고 또 어학원또한 교회가 될수 없지요.

 

Questioner: You made a clear point. But the church offers this kind of service as a way of missionary work since they proclaim that God is so great that his home can offer various services including language course. In addition, I had financial difficulty and could not send my children to the language school right next to my house. That is the situation.

 

한가지 정확하게 짚어주셨는데 현실적으로는 교회에서 선교의 방법론으로 어학을 가르키고 또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병원도 하고 어학원도 하고 다한다는 그런 논리가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제가 경제적으로 어려운상황에 있어서 옆에 어학원이 있는데 그곳에 보낼형편이 안됩니다.

 

Chong An Sunim: English is very important for the kids. Do everything you can that they would study. Thank you for your effort to bring your kids to the modern age.

영어는 자녀교육에 매우중요합니다. 자녀들이 배울수있도록 최선을 다하십시오.
아이들이 현대사회에 맞게 성장할수 있도록 노력 하시는것에 감사드립니다.

 

Question: My question is similar to the question which the Bosalnim asked before about Bodhidharma who came to the East. There is one hwadu: What is the meaning of the Bodhidharma came to the East? The tree in the courtyard. I understood that it is regarding our job as a human being. My question here is that as a human being my job is to attain Enlightenment or is it to follow our pilgrimage as Korean Buddhist or is it to follow a kind of cultural trend? What is our true job?

 

아까 보살님께서 질문한 내용과 맥을 같이하는데요. 달마대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까닭이 무엇입니까 하는 질문에 큰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뜰앞의 잣나무니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본분사에 대한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본분사는 우리가 취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인지 아니면 우리의 본분사가 대한민국을 거쳐가는 불교순례의 과정인지 아니면 현각스님이나 청안스님처럼 서양으로 뻗어가는 문화의 흐름인지 알고 싶습니다.

Chong An Sunim: Gosanim, originally the Dharma has never moved.
It has never appeared or disappeared in any country.

거사님, 원래 법은 움직인적이 없습니다. 어느나라에서 생겨나거나 멸하지도 않았습니다.

Wherever you are, it is present fully with complete brightness. It is all in our hearts,
in all human beings. It is our job to wake up and follow it wherever we are.

어디를 가셔도 법은 완전한 광명으로 충만합니다.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있고 또 모든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우리가 할 일은 성성하게 깨어있어 법을 따르는것입니다.

I cannot talk about cultural trends. I am not part of any. What I encourage all of us to do is to find our way.

문화의 흐름이나 경향에 대해서는 드릴말씀이 없군요 저는 그것의 일부가 아니니까요. 제가 여러분 모두에게 권유하는것은 길을 찾으라는것입니다.

If this way leads you to the temple right next door, then that was your way. If your direction leads you three times around the world, then you find your place at the other end, then that is your way. Our teaching says that great way has no gate.

여러분이 가는길이 여러분을 바로 옆에 있는 사찰로 인도한다면 이것이 바로 여러분의 길인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정한 방향이 세계를 세번일주한다음 다른 어떤장소로 인도한다면
그것또한 여러분의 길일것입니다. 그래서 옛 부터 대도무문 (大道無門)이라고 말합니다.

You need to understand that. Because this teaching, this path does not depend on time or space. Let us find our way, which leads us beyond life and death, beyond coming and going, appearing and disappearing.

이것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가르침, 이 구도의 길은 시간과 공간에 매인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과사를 초월하고 오고감을 초월하며 생멸을 초월하는 길을 찾도록 합시다.

So I hope that we can strive and practice together lifetime after lifetime to attain that. As our Dharma sharing comes to its end, I would like to appreciate your very sincere heart and effort that you have put into this tradition. Without this effort, great masters could not be born here.

세세생생 같이 정진하며 수행하여 성취할수있기를 발원합니다.
법문을 끝으로 여러분들이 이러한 전통을 위해 쏟은 신실한 마음과 노력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러한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의 위대한 스승들은 이곳에 태어날 수 없었을것입니다.

Our Juji Sunim quoted many great monks' name in his introductory. Why they were born here, why not in China, Japan, India, Tibet or Nepal? Why not in any of these countries? These great minds are not attached to any karma, any kind of incarnation. They can go without kimchi also, but they chose to be born here.

법회를 시작할 때 주지스님께서 여러 위대한 대덕스님들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분들이 중국이나 일본,인도,중국,티벳 또는 네팔에 태어나지 않고
한국에 태어났을까요?

이분들은 어떤업이나 윤회에 걸림이 없으십니다.
김치가 없어도 사실수 있지만 이곳을 선택해 태어나셨습니다.

Think about this very deeply. Because it is due to the contribution of selfless and sincere effort from all of you that this country is still suitable for these great minds to be born.

이점을 한번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모두의 이기심없는
헌신과 진실한 노력이 있었기에 이러한 위대한 영혼들이 한국에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The seed has to get to the right soil. Only then it can become a great tree, which serves as great refuge for all beings.

씨앗은 적절한 토양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야만 모든 중생에게 휴식처를 제공할수있는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So, let me appreciate very much all your hard work and practice.

Thank you for your attention.

이런이유로 여러분 모두의 노고와 수행에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의견 2
끄덕이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법문한권을 얻어갑니다. 가람지기님의 보시에  감사드리며 청안스니믜 명쾌한 법문에 그대로 부처가 되는것 같습니다. 가람지기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성불하십시오.   13-12-08 08:26  답변
임하정
다시 보아도 언제나 명쾌한 말씀, 마음 거울 밝아짐을 느낍니다. 스님 내내 건강하시고 가람지기님도 강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_()()()_   17-01-17 12:57  답변 삭제